북한 형제외교관 일가족 동반맘명 배경·의미…체제염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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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김정일 (金正日) 의 신임받는 형제외교관 가족의 동반망명은 연초 황장엽 (黃長燁) 노동당비서의 한국망명과 함께 북한체제에 큰 구멍이 급속히 뚫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보인다.

특히 대사로는 처음으로 망명한 장승길 이집트주재 대사가 역시 외교관인 형 승호씨와 사전에 치밀하게 의논, 동반탈출한 것으로 추정됨으로써 북한은 해외 외교망에 대한 점검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장대사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의 아낌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그렇다.

이들의 행동에는 우선적으로 문책에 대한 불안등 개인적 사정이 얽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이 북한정권과의 오랜 충성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은 세계와 접하는 북한 외교관들이 이제는 화석화 (化石化) 돼가는 '조국' 으로 복귀하는 것을 점점 꺼린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장승길 대사의 경우 망명 배경은 복합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캐나다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아들 철민 (19) 군의 이탈, 한국.이집트의 대사급 수교를 막지 못한 책임, 그리고 대사역할의 부진에 대한 문책의 두려움이 작용했다고 우리 고위 외교관은 분석했다.

장대사가 이집트라는 핵심 임지에 부임한 것은 김일성 (金日成) 사망 나흘후인 94년 7월12일. 그는 많이 바뀐 국제환경에 부닥쳐야 했고 김일성의 사망으로 카이로의 활동은 제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임지 부임후 신임장제정 일정을 무시한채 김일성의 상중 (喪中) 이라는 이유로 6개월간 신임장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무사 이집트외무장관이 김일성이 아닌 새 지도자가 준 신임장을 내라고 했지만 그것을 거부해 화제가 됐다는 것이다.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아들의 잠적인 것으로 보인다.

철민군은 95년7월 우리측 공관에 망명의사를 타진한 적이 있으며 평양과는 딴판인 카이로의 분위기에 취해 공관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장대사가 평양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지만 그럭저럭 견뎌냈다.

그가 부임한지 8개월뒤에 발생한 한국.이집트 수교는 결정타였다.

장대사는 "한국이 50억달러를 투자하고 수교했다" 는 흑색선전으로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평양을 향해 연속 실점을 기록한 것이다.

다음달초로 다가온 평양귀환을 앞둔 장대사는 최근 상당한 심리적 중압감을 느꼈을 것으로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한다.

장대사의 이같은 불안한 환경을 눈치채고 중동내 북한정보에 관심을 가진 제3국이 장대사의 결행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파리 외교가에 돌고 있어 관심을 끈다.

북한은 이스라엘과 적대상태인 중동국가에 미사일등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때문에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정보기관이 아들 잠적으로 곤경에 처한 장대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대사의 형 장승호 참사관도 업무부진을 문책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오스트리아 주재 무역대표부에서 10여년을 근무한뒤 94년 파리로 부임했다.

그는 장사수완이 뛰어났으며 이른바 '충성자금' (북한정권 지도부로 들어가는 해외수익) 면에서도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상황이 달라져 중계무역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등 사업실적이 부진해지면서 그는 문책을 받을까봐 걱정한 것으로 파리외교가에는 얘기가 돌고 있다.

장씨와 동생 장대사는 문책의 불안감과 해외생활을 통해 얻은 북한체제에 대한 실망감을 공유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형과 동생이 각각 유럽과 중동에서 '조국 이탈' 의 의지를 키운 것이다.

북한 해외체제망의 동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같다.

특히 콩고대사관 1등서기관 고영환 (高英煥) 씨와 잠비아 대사관의 현성일 (玄成日) 씨에 이어 외교관 망명이 모두 북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 치중돼 북한 외교의 큰 축에 구멍이 뻥 뚫리게 됐다.

박보균 기자.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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