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쁜 영화' 음악만은 큰 감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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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저 노래 누가 불렀지?" 개봉중인 '나쁜 영화' (장선우 감독) 를 본 관객들은 극중 행려들의 묘사장면에서 길게 흐르는 어어부밴드의 노래 '아름다운 세상에 - 어느 가족 줄거리' 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껌자국과 담배꽁초 가득한 서울역광장을 안방삼아 하루하루를 들풀처럼 떠도는 행려들을 스케치한 장면에서 장장 5분간 연주되는 이 노래는 듣는이의 폐부를 찌르는 힘이 있다.

'마누라와 아들은 집을 나가고 자신은 등뼈가 부러진' 어느 남자의 절망적 심정을 뽕짝조 리듬에 힘있는 두성 (頭聲) 으로 뽑아내는데 그 속엔 듣는 이의 공감을 일으키는 원시적 에너지가 꿈틀댄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토악질' 이라는 홍보문구가 호들갑스러울진 몰라도 과장은 아니다.

이 노래를 비롯해 '담요세상' 등 괜찮은 노래 4곡을 싱글음반에 담아 올초 데뷔했지만 판매고는 신통찮았던 어어부밴드는 이제 '나쁜 영화' 를 본 10만명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부상하고 있다.

노래솜씨나 가사의 철학을 볼때 그들은 좀더 많은 청중에게 자신을 표현할 자격이 있다.

해산한 삐삐롱스타킹의 리더 강기영이 음악감독을 맡은 '나쁜 영화' 는 작품성과 제작과정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음악만은 '좋은 영화' 란 칭찬을 들을만하다.

어어부밴드말고도 황신혜밴드의 '짬뽕' 등 자유스런 분위기의 노래들이 적소에 삽입됐다.

돈을 훔친뒤 유원지에서 노는 10대 주인공들의 테마곡 '씹자 씹어' 는 장선우감독이 가사를 쓰고 아들 승민군과 밴드 신속배달이 작곡했으며 이쁜이역을 맡은 배우 권혁신이 부른 이채로운 곡. 영화음악은 처음이지만 강기영은 작곡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음악이 반드시 영화의 내러티브와 일치될 필요는 없다는 것. 공포스런 장면이라고 무조건 낮고 어두운 음만 쓴다면 그것은 영화음악이라기보다 효과에 가깝다는 것이다.

영화음악은 영화와 연결돼 있으면서도 또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복합성을 지닐때 영화의 육체가 풍요로와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때문에 가끔 전통적 방식으로 음악을 삽입해줄 것을 요구하는 감독과 다투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의 경우 감독이 노래가 워낙 좋다며 일부러 장면을 늘릴만큼 죽이 맞았다는 후문이다.

영화음악은 음반이 아닌 극장에서 감상하는 것이 옳다는 게 강기영의 생각이어서 별도의 사운드트랙 앨범이 나올 전망은 없다.

기사를 읽고 음악이 궁금한 팬들은 현재로선 직접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음악을 음미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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