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교육 성공사례 군포 흥진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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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진초 이선아(22)교사와 학생들이 방과 후 바둑 영재 심화반에서 바둑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기자 choi315@joongang.co.kr

“바둑으로 집중력·암기력 높였어요” 경기도 군포에 위치한 흥진초등학교(교장 김용대)는 바둑의 장점을 학습에 효과적으로 접목한 사례로 유명하다. 흥진초 바둑선수단은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닷새간 열린 2008세계화인바둑대회에서 고급부·저단부 등이 참가한 전 부문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용대 교장은 “기초바둑교육의 효과는 잠재적으로 남아 어린이가 나중에 자라서도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며 “전교생이 바둑으로 인해 일체감 및 동료의식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집중력과 암기력 엄청 좋아져

 바둑은 집중력을 높이는 일등 공신이다. 한자리에 앉아 흔들림 없이 상대와 나의 수를 정확히 읽어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월 세계화인바둑대회 저단부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김동현(10·흥진초 4)군은 “예전엔 돌아다니는 것만 좋아해 자리에 앉아 있질 못했다”며 “바둑에 재미가 붙고 나서는 공부도 한번에 1시간 넘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군은 최근 거의 전과목 90점대를 맞는 등 학업성적도 눈에 띄게 올랐다고 덧붙였다. 바둑 영재반 이선아(22) 교사는 “집중해서 수를 읽다 보면 산만한 성격이 상당부분 교정된다”고 말했다.

 복기(한번 두고 난 바둑을 기억을 되살려 처음부터 다시 놓는 것) 하다보면 암기력도 향상된다. 같은 대회 고급부에서 우승한 김민식(10·흥진초 4)군은 “예전엔 20수도 못 외웠는데 요즘은 복기는 100수까지 거뜬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수학은 바둑으로 인해 가장 효과를 본 과목. 바둑이 끝난 후 승부를 가리기 위해 서로 몇집인지 헤아리는 과정에서 계산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조상연 교감은 “바둑은 수 만 번을 둬도 똑같은 판이 나오는 경우가 없다”며 “한 수를 둘 때마다 머릿속에 상대방과 나의 집 수를 비교해야 하기 때문에 수리력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대한바둑협회가 ‘바둑교육이 아동의 지능 및 인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도 바둑교육을받은 아동이 그렇지 않은 아동에 비해 수리력과 전체지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둑 영재반 박문흥(50) 교사는 “바둑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로 하여금 사회성 및자기절제를 배우게 한다는 것”이라며 “뜻대로 안되면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감정조절을 못하던 아이가 바둑을 배운 지 5개월만에 성격을 고쳤다”고 말했다. 김동현 군은 “친구들과 싸우고 나서도 내 잘못이라고 생각되면 바로 사과한다”며 “바둑을 두면서 승패를 인정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단계별 교재로 전교생이 바둑을 두다

 흥진초가 바둑 명문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조 교감의 헌신적 뒷받침이 있다. 지금은 어린이 단계별 바둑교재를 자체 출간하고 전교생이 바둑을 배우고 있지만, 2004년 바둑특성화학교로 처음 지정됐을 때는 20명 안팎의 어린이에게만 바둑을 가르쳤다.

 6개월 정도 지나자 조 교감은 극소수의 어린이만 특성화 교육의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특성화 학교’가 되려면, 전교생이 해당 특기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듬해 조 교감은 학부모 동의를 받아 월 2시간씩 정규 교과시간에 전교생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바둑수업의 만족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학부모 80%가 아이들의 태도 변화등을 이유로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조 교감은 “그러고나서 6개월 만에 시간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지금처럼 주 1회 1시간의 수업으로 확대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교재 욕심이 생겼다. 시중에선 어린이들이 쉽게 보고 배울 수 있는 마땅한 교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 교감은 ‘초등학생 수준에 맞는 단계별 바둑 교재’를 발간하기로 결심했다. 흥진초 교사들이 군포시청·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 군포시 바둑협회장,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과 교재개발에 나섰다. 2007년 2월, 마침내 6권의 교재가 출간됐다. 교재에는 단계에 따른 다양한 바둑 기술 뿐만 아니라 사자성어,바둑에 숨겨진 이야기도 수록해 학습과 인성을 함께 높일 수 있도록 꾸몄다.

 적정한 교재가 갖춰지자 이후는 순조로웠다. 학교에서 엄선한 선생님과 함께 체계적으로 바둑을 배운 어린이들은 크고 작은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 국내대회의 상을 휩쓰는 것은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바둑영재반 정원은 35명. 전교생 중 바둑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자체시험을 거쳐 선발된다. 영재반에 선발되면 주 5일 5시간씩 강행군하지만 중도 이탈자는 거의 없다. 특성화 담당 천무영 교사는“친구들과 선생님이 함께 어울려 즐겁게 공부하기 때문”이라며 “바둑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성적은 대부분 상위권”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감은 “바둑은 인성 및 학습 양면을 모두 향상시킬 수 있는 훌륭한 교육 매개체”라며 “학교를 졸업할 때 적어도 5급 실력을 갖게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프리미엄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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