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한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60주년]제2조국 舊蘇붕괴로 또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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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금년은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극동 연해주 지방에 살던 한인 (고려인) 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강제이주 60주년을 맞아 중앙아시아 현지에서는 고려인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운동과 각종 학술회의등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스탈린이 강제이주명령서에 서명한 8월 21일을 맞아 중앙아시아 현지취재로 고려인 사회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편집자

지난 37년 옛 소련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들은 현재 우즈베키스탄 (22만여명) 과 카자흐스탄 (10만여명)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다섯명중 한명이 대학교육을 받았을 정도로 교육열이 매우 높고 근면해 의사.교사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고 그만큼 경제적으로도 풍요를 누려왔다.

그러나 옛 소련의 붕괴와 함께 이 지역에 새롭게 대두된 민족주의, 급격한 체제변혁에 따른 경제난등은 고려인 사회에 많은 사회.경제적 갈등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많은 고려인들이 전문직을 버리고 일확천금을 노려 자본주의 비즈니스에 뛰어들었지만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옛 소련시절에는 국가이념으로 민족간 평등 의식이 강조돼 고려인들은 소수민족이긴 했지만 사회 주요분야에 활발히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멸망 후 새롭게 독립국가가 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은 자연스럽게 자민족 중심 정책을 추진하게 돼 고려인은 상대적인 불리함을 겪고 있다.

특히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고려인들에게 새로이 강조되는 우즈베크어.카자흐스탄어는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꼭 고려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동방대학의 김문욱 (金文郁) 교수는 "우즈베크어나 카자흐스탄어를 새롭게 배우는 것은 고려인이나 러시아인이나 다른 소수민족도 다 비슷한 입장이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장애가 아닌 기회로 여기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조상의 나라 한반도와 자신이 태어나 자란 중앙아시아. 이런 2개의 조국을 갖고 있는 이들 고려인 가운데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어려서 강제이주된 고려인 1세등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과의 교류는 증가했지만 한인으로서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국립대의 張원창 교수가 최근 고려인 4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조선) 을 조국으로 인식한 고려인은 전체의 6.4%에 불과했다.

이 지역 고려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도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문욱교수는 현재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이 많은 혼란을 겪고있다는데 동의하면서도 "이것이 꼭 심각하고 위험스런 것만은 아니다" 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조상의 땅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국에 의존하기보다는 중앙아시아 국가의 국민으로서 고려인들이 새로운 경쟁과 위기를 극복할 기회" 라고 말하고 한국측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다.

알마티 (카자흐스탄).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염태정 기자

◇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약사 (略史) ▶1811년 홍경래의 난을 전후해 연해주로 이주 시작▶1869년 한반도 극심한 흉작 후 대대적 이주▶1930년대 고려인 20여만명으로 증가▶1937년 8월21일 스탈린 강제이주 서명▶1937년 9~12월 20여만 고려인 강제 이주▶1938년 1월 공산당, 중앙아 한인학교 폐쇄▶1953년 스탈린 사망▶1956년 거주이전의 자유등 공민권회복▶1989년 옛 소련 강제이주 불법성인정▶1991년 러시아의회, 탄압받은 민족 명예회복법 제정▶1993년 러시아 한인에 대한 명예회복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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