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도약하려면<上> - 전직 도요타맨의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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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자동차 업계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자동차업체는 생산대수를 줄이고 감원과 공장 폐쇄로 대응한다. 강자였던 일본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도요타·닛산은 엔화 강세 여파까지 겹쳐 수십 년 만에 적자를 낸다. 현대·기아차는 상대적으로 원화가치 하락이라는 도움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위기는 현대·기아차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도요타에서 34년(미국 주재만 33년) 근무한 이마이 히로시(今井弘·76·사진) 전 미국도요타물류 사장의 기고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세계 모든 자동차 업체가 판매부진으로 감산에 들어가고 있다. 이런 사태가 심화하면서 자동차 생산 국가들은 자국 자동차산업 보호 정책을 잇따라 발표한다. 미국 빅3(GM·포드·크라이슬러)의 몰락도 그렇고 57년 만에 도요타의 적자도 그렇다.

이런 악화된 환경이 실물경제나 주식시장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런 상황을 미디어들은 ‘안 좋아진다’는 뉴스로 쏟아낸다.

이럴 경우 소비자는 더욱 방어적으로 변해 당장 필요한 것 이외의 지출을 자제하게 돼 자동차 같은 내구재 판매는 더욱 감소한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이든 반드시 좋아지는 계기는 나타난다. 잘못된 상황을 스스로 복구시키는 장치가 작동되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자동차 업체 지인들의 이야기와 뉴스를 분석해 보면 ▶감산, 조업 중단에 이어 노동시간 단축과 인원 감축, 차종·생산계획 수정 이후에 뭘 해야 할지 ▶올 하반기 자금을 어떻게 버틸지 ▶내년부터 조금씩 회복될지도 모르는 시장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대해선 아이디어가 없어 보인다. 부활의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경영진의 지도력과 경험을 살려 위기를 넘겨야 할 시기다. 도요타가 2년 전 내보냈던 ‘판매의 달인’ 이나바 요시미 부사장을 미국판매담당 사장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게 그것이다.

위기가 끝났을 때 세계 자동차 산업의 구조가 크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 이번에 도산하는 메이커도 나온다. 살아남아도 신차 개발을 계속하지 못해 다음 세대에 탈락할 업체도 있을 것이다. 각국의 보호정책이 심화돼 수출시장이 금융위기 이전처럼 열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일본·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수출을 통해 판매대수와 이익을 늘려 왔다. 하지만 이번 위기에서는 당분간 내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현재의 소비 위축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얘기다. 도요타 역시 60년간 지켜온 종신고용 대신 명예퇴직이 필요할 것이고 한국 업체는 노조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개선을 위해선 격렬한 대결도 불가피하다.

지금은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비교적 쉽게 진출할 수 있는 거대 시장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이다. ‘자동차 판매가 극도로 위축돼 있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할지 모르겠다. 금융시스템 마비로 미국인 대부분의 금융수입은 ‘0’에 가깝다. 불황이 심해지고 실업률이 더 증가하면 미국인들의 자동차 소비는 더욱 줄고 소형차 중심으로 바뀔 수 있다. 33년간 미국에 주재한 경험으로 보면 신차 판매가 증가하는 시기가 반드시 돌아온다. 미국은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이 안 되는 라이프 스타일이 확립된 지 오래다. 소비 패턴이 바뀌면 과거 영화를 누린 대형 픽업트럭이 안 팔릴 수 있지만 자동차 전체 소비가 줄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빅3는 소비자가 사고 싶어 하는 차종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정부의 구제금융을 통해 연명하지만 제품 라인업을 빠르게 바꿀 만한 개발 여력이 없다. GM이 마티즈 경차를 미국에 내놓거나 크라이슬러가 피아트와 제휴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다. 반면 일본 업체의 반응은 빠르다. 생산 차종이나 설비 변경을 순식간에 진행한다.

한국차는 어떤가. 르노삼성은 닛산이 있는 한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GM대우는 GM에 경차나 소형차를 제공하는 게 고작이다. 자체적으로 미국 판매망을 구축할 힘이 없다. 미국은 현대차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일본차, 특히 도요타와의 경쟁은 피할 수 없다. 현대차의 미래는 미국에서 도요타와의 경쟁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된다. 힘은 들겠지만 도요타를 이길 가능성이 있다. <하편에 계속>

정리〓김태진 기자

◆이마이 히로시

- 1958년 도쿄대학(국제관계) 졸업, 도요타 입사

-59년 도요타 해외주재원 1호 발령

-81년 미국도요타판매 부사장

-88년 미국도요타물류 담당 부사장

-91년 미국도요타물류 사장

-94년 삼성자동차 고문

-2004년 제주 블루하와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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