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비스면 낮은 가격 ‘지출 테크’ 해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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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26면

마케팅 이론으로 시작해 보자. ‘캐즘 이론’이 있다. 벤처기업의 생태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다. 벤처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규 시장과 주류 시장 사이의 간극, 곧 캐즘(협곡)을 넘어 주류 시장을 잡아야 한다. 현재 온라인 자동차보험 시장은 캐즘을 맞았다. 지난달 말 현재 전체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온라인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다. 2001년 시작 당시 0.4%에 비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그러나 점유율 증가 추이를 뜯어보면 얘기가 다르다. 성장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보험업계의 큰형 삼성화재가 온라인 진출을 선언했다. “왠지 찜찜해서…”라는 이유로 온라인 가입을 꺼렸던 다수의 소비자를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금융위기로 한 푼이 아쉬운 이때, 온라인 자동차보험으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지출테크’ 방법을 알아봤다.

삼성화재도 뛰어든 온라인 자동차보험 시장

다음달 3일 판매 시작
삼성화재는 다음달 3일 오후 3시부터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자동차보험 ‘마이 애니카(My anycar)’를 판매한다. 이 상품은 인터넷 전용 홈페이지(www.myanycar.com)를 통해서만 판매된다. 전화 판매를 위한 텔레마케팅 상담원은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인터넷 활용과 계약 관리를 지원하는 고객상담(CS)센터는 운영할 계획이다. 보험료는 기존 삼성화재의 ‘애니카’ 자동차보험보다 15% 정도 싸다. 이 회사 홍보팀 김동재 과장은 “인터넷 자동차보험은 값은 싸지만 삼성화재가 제공하는 기존의 보상 서비스망과 긴급출동 서비스, 애니카 랜드망을 똑같이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조만간 삼성화재가 온라인 자동차보험 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화재의 판매 규모와 업계 1위사라는 브랜드 파워 때문이다. 2006년 현대해상이 하이카다이렉트라는 온라인 전문 자동차보험사를 설립,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도 그랬다. 하이카다이렉트는 온라인 자동차보험 시장 진출 3년여 만인 지난달 말 현재 시장의 15.5%를 점유하며 업계 2위로 뛰어올랐다. 김 과장은 “기대는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며 “회사는 고객들에게 저렴하게 보험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입 창구를 연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싸고 질 좋기는 어렵다는데…
얼리 어답터(남보다 먼저 신제품을 써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자동차보험이 대세다. 온라인 자동차보험의 최대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보험료가 싸다는 점이다. 대체로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것보다 15% 안팎 저렴하다. 이에 따라 투자로 돈을 불리기보다 나가는 돈을 줄여 돈을 모으는 지출테크가 중요한 요즘 같은 시절에는 온라인 자동차보험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손해보험협회 홈페이지(www.kina.or.kr)에서 제공하는 자동차보험료 비교 시뮬레이션 서비스를 통해 보험료를 산출해 봤다. 대형 세단(2700㏄), 38세, 30세 특약, 운전자 범위는 부부, 성별은 남자, 전 담보 가입으로 조건을 넣었다. ‘출퇴근 및 가정용, 대인배상2 무한, 대물배상 3000만원, 자기신체사고 3000만원, 차량등급 6등급(100%), 자기차량손해 자기부담금 5만원, 무보험차상해 2억원, ABS 장착, 오토 차량, 교통법규 위반 할인·할증 기본(100%), 긴급출동 미가입’을 가정하고 보험료를 산출했다.

그 결과 같은 보험 상품을 설계사와 온라인을 통해 동시에 팔고 있는 보험사 가운데서 흥국쌍용화재가 양쪽의 가격 차이가 가장 컸다. 온라인으로 가입하면 최초 가입(차량가액 3000만원, 2009년식)은 18만8740원, 가입 경력 3년 이상(차량가액 1500만원, 2006년식)인 경우엔 11만5140원을 아낄 수 있었다.

보험사를 따지지 않는다면 온라인으로 가입하면 최대 31만2300원까지도 절약 가능했다. 앞서 예를 든 조건으로 자동차보험에 최초 가입하는 경우 흥국쌍용화재 보험을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면 연간 128만4060원을 내야 한다. 그러나 전화나 인터넷으로 하이카다이렉트 보험에 가입하면 97만1760원만 내면 됐다.

다만 실제 보험료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 각종 특약이 추가되고 개인 사정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질 수 있다. 손해보험협회 최종수 홍보팀장은 “협회 보험료 시뮬레이션은 조건이 세분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대강의 경향을 보여줄 뿐”이라며 “정확한 보험료를 알고 싶다면 보험 가입 1개월 전 대리점에 보험료 산출을 의뢰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 이름·주민등록번호·차량번호 등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격 ‘너머’를 따져라
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자동차보험은 특히 사고가 났을 때 얼마나 잘 처리해 주느냐가 중요하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도 설계사를 통한 보험 가입 비중이 여전히 높은 것은 설계사들이 교통사고 처리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모습이 가입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손해보험협회 최 팀장은 “자동차보험은 가격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났을 때 본인이 가장 편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사고가 났을 때 보험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느냐도 따져봐야 한다. 온라인 자동차보험 가입을 꺼리는 이들 가운데는 “온라인 보험은 보험금이 짜다”고 지적하는 이가 많다. 실제로 보험소비자연맹이 2000년 4월(이후 설립된 보험사는 설립 시점)부터 2007년 6월까지 발생한 교통사고 중 부상 급수 8~11급에 해당하는 602만8958명(전체 교통사고의 78%)의 보험금 평균을 조사한 결과 온라인 전문 자동차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액이 대체로 적었다. 이에 대해 하이카다이렉트 보상지원부 윤장수 부장은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돼 보험금이 많이 나가는 장기 고액 환자의 비중이 작은 것이 주요 원인”이라며 “계약 조건에 따라 정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으로 가입할 경우 보험금 지급 조건과 관련되는 세부 사항을 놓칠 수 있다. 보험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 최낙현 간사는 “연령 특약을 잘못 기입해 정작 사고가 났는데도 보험금을 한 푼도 못 받은 사례가 있었다”며 “온라인으로 보험에 가입할 때는 설계사를 통할 때보다 가입자가 더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캐즘 이론’은

199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수만 개의 벤처기업이 있었다. 이 중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수십 개, 잘 쳐야 수백 개다. 그렇다면 어떤 곳이 살아남았을까. 바로 ‘캐즘(chasm)’을 넘어선 기업이다. 캐즘은 지질학 용어다. 지각 변동 등의 이유로 지층 사이에 큰 틈이 생겨 서로 단절된 협곡을 말한다. 첨단 제품이 나오면 초기에는 혁신성을 중시하는 소비자(얼리 어답터)가 물건을 산다. 그러나 이후에도 물건을 팔자면 ‘보통’의 소비자를 잡아야 한다. 이렇게 초기 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단절이 생긴다. 이게 캐즘이다. 대부분 벤처기업은 이 캐즘을 넘어서지 못하고 쓰러진다.

미 실리콘밸리의 컨설턴트인 제프리 무어는 1991년 벤처기업의 성공과 좌절을 ‘캐즘 이론’으로 설명했다. 캐즘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는 혁신자, 선각 수용자, 전기 다수, 후기 다수, 지각 수용자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기업이 살아남자면 소비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기 다수와 후기 다수 계층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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