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상대 창고업체 소송서 이기면 … 추징금 완납, 남는 돈 국가에 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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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냉동창고업체인 ㈜오로라씨에스(구 미락냉장)의 소유권을 놓고 동생 노재우씨와 소송을 진행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18일 항소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항소에 대한 입장’을 통해 “재판에서 이기면 추징금을 완납하는 것은 물론 남는 재산을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가도 소송에 참가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형제 간 재산 싸움이란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소송 목적이 ‘재산 되찾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다툼의 쟁점은 노 전 대통령이 1988년과 91년 두 차례에 걸쳐 재우씨에게 준 120억원의 성격이다. ‘갖고 있다 돌려 달라’고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이 돈으로 창고 업체를 설립하라’고 했는지다. 만약 앞의 경우라면 회사는 재우씨와 조카 호준씨 소유가 되지만, 뒤의 경우라면 노 전 대통령의 것이 된다. 현재 이 회사의 재산 가치가 최소 700억원대에 달해 미납 추징금(전체 2628억원 중 289억원)을 내는 데 충분할 것으로 노 전 대통령 측은 보고 있다.

처음엔 연희동 쪽에 유리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회사 부동산을 자신 소유의 다른 회사로 헐값에 넘긴 혐의(배임)로 회사 최대주주이자 이사인 조카 호준씨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올 들어 3건의 재판이 모두 재우씨 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는 “돈을 맡기면서 구체적인 관리 방법을 제시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청구를 각하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국가로 회수돼야 할 재산이 개인 주머니로 들어가는 셈”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리인인 이영수 변호사는 “재우씨가 95년 비자금 사건 당시 검찰에서 ‘형이 잘 관리하라고 맡긴 돈’이라고 진술했다”며 “재우씨와 전 대표이사 박모씨 등이 김옥숙 여사(노 전 대통령 부인)에게 회사 운영 상황을 지속적으로 보고해 왔음을 밝혀줄 증거 자료와 증인들을 보강해 진짜 회사 주인이 누군지를 가리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재산 환원 취지에 대해 “인생을 정리하면서 국가에 대한 책임(추징금)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우씨 측은 “검찰 진술은 심리적 강박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고, 이른바 ‘보고 자료’도 현재 우리와 갈등 관계인 전 대표 박씨가 빼돌려 최근 연희동에 전달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호준씨 장인이자 회사 주주이기도 한 이흥수 변호사는 “실제로는 노 전 대통령이 재우씨에게 ‘그냥 쓰라고 준 돈’(증여)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국가가 재우씨를 상대로 낸 120억원 추심 소송에서 ‘맡긴 돈’이란 판결이 2001년 확정된 만큼 이를 뒤집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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