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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야 놀자] 위험 등급 ‘그때그때 달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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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펀드에 투자할 때 부담해야 할 위험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가장 큰 위험은 펀드의 가격 변동 위험입니다. 다음은 부도로 인한 손실 위험, 유통 수량이 부족해 조그만 매물에도 가격이 하락하는 유동성 위험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위험은 결국 ‘손실 위험’으로 나타납니다. 손실 위험은 측정 기간이 충분히 길다면 가격 변동성, 즉 표준편차에 의해 모두 나타납니다. 하지만 충분한 기간이 3년이냐 5년이냐에 대한 질문에는 답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펀드 판매사는 소위 자본시장법에 의해 도입된 ‘적합성의 원칙’에 따라 투자자를 투자 성향별로 다섯 개 등급으로 나누어 이에 적합한 펀드를 권유해야 합니다. 펀드를 다섯 단계로 나누는 기준은 앞서 말한 손실 위험입니다. 동일 펀드에 대해 판매사별로 다른 등급을 부여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자 위험 등급 결정 책임이 운용사에 떠넘겨졌습니다. 그런데 운용사들조차 위험 등급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양입니다.

펀드 위험 등급은 이렇게 부여돼야 한다는 단일 기준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위험을 측정할 때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면 모든 자산의 위험이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전개된 세계적인 주가 폭락 사태로 가치주·성장주는 물론 선진국·신흥국 주식 모두 비슷한 하락폭을 기록했습니다. 평상시였다면 각각의 손실 위험은 전혀 다르게 나타났을 것입니다. 이렇듯 손실 위험은 측정 시점·기간·기준에 따라 다릅니다.

펀드 위험 등급에 대해 미국에서 한때 논의되기는 했으나 딱 부러지는 기준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다만 시장에서 인정되는 합리적 모델을 만들고 일관성 있게 적용한다면 위험 등급 오류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도록 하면 될 일이라고 봅니다. ‘적합하다’는 말은 포괄적 일상용어이지 과학적으로 구체화하기 곤란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운용사들이 실제 동일한 위험을 가진 펀드에 다른 등급을 부여한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문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펀드의 위험 등급 자체는 어찌 보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입니다. 투자 성향 조사를 위한 설문지가 모두 동일한 나라, 위험 등급을 부여하는 기준이 모두 동일한 나라에서 우수한 펀드가 탄생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제로인 최상길 전무 www.funddoc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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