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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산다]제주 모슬포 인기가수 은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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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생각난다 그 오솔길/그대가 만들어 준/꽃반지끼고…. " 70년대 우리 가요계의 애창곡중의 하나였던 '꽃반지 끼고' 의 여가수 은희 (본명 金恩熙.46) 씨. 그가 사는 곳은 제주섬 시골벽지다.

제주공항에서 40여㎞ 서부산업도로를 따라 달려간 남녘 마을 모슬포는 그가 태어나 여고 시절을 보냈던 곳.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다시 찾은 고향이다.

지금 그의 직업은 패션디자이너. 가요계에서 주가를 올릴 즈음인 71년 돌연 미국으로 떠나 20여년만의 귀향으로 그가 새로 얻은 삶이다.

그는 뉴욕 이국땅에서 패션디자이너의 산실이라는 FIT (Fashion Institute Technology) 를 다녔다.

"우리 문화와 너무도 다른 그곳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이 걸치고 있던 옷이었습니다. "

그렇게 '옷' 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던 그가 찾아낸 자신만의 소재는 '제주 갈옷' .면재료에 감물을 들여 만든 질긴 옷감 때문에 제주인들이 노동복으로 즐겨 입어오던 전래복식이다.

이역만리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가능성과 자신의 일거리를 찾아낸 그는 무작정 보따리를 꾸렸다.

90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여태껏 번 돈을 모두 투자했다.

땅을 사고 사람들을 모았다.

제대로 일을 시작하자니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보내던 세월끝에 그는 95년초 고향 모슬포 농공단지내 땅 4천평에 대형 의류전시제작관을 짓기 시작했다.

봉화를 올렸던 제주의 독특한 방사탑이 이 건물의 건축양식. 제주의 젊은이 15명을 모아 갈옷 패션의류 전문업체 ㈜우리를 설립한 것도 그때의 일이다.

그동안 벌인 패션쇼만도 제주에서 열리는 유채꽃잔치 행사장.부산롯데백화점을 비롯, 모두 11차례. 지난해 4월엔 KBS빅쇼 무대에 출연해 제주갈옷을 알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호미로 산을 파는 마음으로' 벌인 일들. '봅데강' ( '보셨어요' 란 뜻의 제주사투리) 이란 브랜드로 지난 6월 제주롯데참피온백화점에 점포를 연뒤 이달엔 대구의 패션거리 대봉동에도 점포 문을 연다.

오는 11월중엔 패션의 중심도시 파리의 샹젤리제거리에 제주갈옷 아틀리에를 꾸민다.

그 덕택인지 고루한 의복으로 취급되던 갈옷이 이젠 제주에서 세련된 전통의상으로 부활, 복고풍 바람이 불 정도다.

이제 그의 관심은 먹거리. 이달중 문을 여는 '돌섬사랑' 을 제주토종 흑돼지등 제주 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생각에 여념이 없다.

"제주섬의 갈옷을 현대화해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옷으로 세계시장에 내놓을 생각이에요. 제가 고향에 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

가수에서 패션디자이너로 변신, 제주 문화 지킴이 노릇을 톡톡히 해내는 그는 '당찬 제주여성답다' 란 말을 듣기에 손색이 없다.

제주 = 양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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