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살아있다]세월과 지역을 초월하는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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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캐나다와 불어권 국가에서 탁원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넬리강의 시집이 서울대 불어권연구소 장정애씨의 번역으로 한국 유수의 출판사 민음사에서 '내가 사랑한 그대' 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기쁘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활발하게 시작 활동을 펼친 넬리강의 시세계는 기독교 정신과 낭만주의적 서정의 만남의 절정으로 평가된다.

기독교적 생명관을 채색하는 넬리강의 서정적 감성은 슬픔이다.

가장 한국적인 시인 김소월의 한 (恨) 의 정서를 방불케하는 넬리강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어들이 국경을 초월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있다고 본다.

내가 읽고난 평가로는 '슬픔.눈물의 미학' 이라 할만한 넬리강의 시들은 인간의 죄로 인해 '피투성이 제물' 이 된 메시아의 가슴에 가득했던 슬픔과 사랑의 비밀을 깊이 탐구하고 전하고 있다.

마치 한국의 시인들이 민족의 가슴 속에 흘러온 원죄와 같이 슬픈 한을 천착하며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키듯이. 죽음 후의 영원을 한시도 잊지 않는 넬리강의 영혼은 언제나 육체 너머의 초월을 향해 날아오른다.

상처 나기 쉽고, 썩게 마련인 육체라는 걸림돌에 부딪치게 되면, 넬리강은 이 문턱을 회피함이 없이 그것에 대면하며 시를 썼다.

넬리강의 유명한 시 '장송곡' '흑인 여인의 무덤' 은 바로 이러한 추구로 본다.

'장송곡' 에서 들려오는 "죽음의 목소리" 는 생명의 "초월적인 외침" 의 역설이다.

또한 "흑인 여인의 무덤위에 피어난 한 송이의 검은 백합" 은 죽음 위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생명.사랑를 웅변한다.

그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져야만" 싹을 틔울 수 있다는 죽음과 부활의 기독교의 생명의 원리와 무관하지 않다.

넬리강은 우리 현실적 물질세계의 기만적이고 '유혹하는 시선' 을 강하게 거부한 시인이다.

가시적인 세계의 기만성은 넬리강의 시적 자아의 '순수하고 솔직함' 과 갈등을 일으키며, 그러한 갈등을 바로 널리 알려진 시 제목 '하얀 슬픔' 이 그대로 말해준다.

이 하얀 슬픔이 바로 이승.저승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넘나드는 한국인의 한과 맞다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현세적 삶을 뛰어 넘어 삶의 저편, 그 후의 의미를 찾는 아름다운 시들은 동서고금을 초월해 영원히 남을 것이고 또 계속 창작될 것으로 믿는다.

미셸 페로〈주한 캐나다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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