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MJ 단둘이 만났다 … 당엔 미묘한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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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박용석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일 정몽준(얼굴)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청와대에서 단둘이 만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회동은 정 최고위원의 요청으로 이뤄졌으며, 2007년 12월 정 최고위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두 사람의 단독 회동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 최고위원은 16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지난 2일 청와대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오찬회의 때 미국을 방문 중이어서 불참했었다”며 “대통령을 만난 지도 1년이 돼 가고 해서 겸사겸사 만났다”고 말했다. 다음은 문답.

-대통령이 뭐라 했나.

“경제위기가 걱정이라는 말씀이었다.”

-당 문제와 관련한 당부는.

“나처럼 당내 세력이 없는 사람이…. 그에 대해 특별히 들은 말이 없다.”

통상적인 만남이란 취지였다. 청와대에서도 “당내 현안과 미국 새 행정부 출범에 대해 전반적인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 “심도 있는 얘기가 오가는 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두 시간여 단독 회동이란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 최고위원은 자신의 오랜 참모들에게조차 회동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갖가지 추측과 분석이 난무했다.

양측 사정에 모두 밝은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진지하게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회동 시점도 묘하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친박(박근혜)계는 뭉쳐 있지만 친이(이명박)계는 모래알”(홍준표 원내대표)이란 자조가 나올 정도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박근혜 전 대표의 구심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더구나 정 최고위원은 누가 뭐래도 차기 후보군 중 한 명이다. 16년간의 무소속 생활을 정리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한 걸 두고 그는 “나의 정치적 운명”이라고 표현했었다. 당에선 그래서 두 사람의 회동을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많다. 이재오 전 의원과 가까운 한 재선 의원은 “이 대통령이 차기 관리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친이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독주에 맞서 정 최고위원을 격려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당의 차기 리더십과 관련 짓는 관측도 있었다. 여권 일각에선 박희태 대표가 4·29 재·보선에 출마하려면 당 대표직을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럴 경우 차기 대표는 지난해 7·3 전당대회에서 차점 득표자인 정 최고위원이 승계하거나 아예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 선출해야 한다. 청와대 주변에선 최근 “정 최고위원의 안정감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대표를 바꾸는 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청와대 정무팀 관계자)이란 경계심도 크다.

◆“정치인은 휴대전화 같다”=정 최고위원은 이날 KBS 토크쇼에 출연, 정치인은 “누구와도 의사 소통을 잘해야 하고 자신이 아무리 잘하는 것 같아도 신형 모델이 나오면 들어가야 하는 점에서 휴대전화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를 라이벌로 의식하느냐”란 질문엔 “아버지가 ‘인생을 살면서 경쟁자를 의식하고 사는 것은 원수를 의식하고 사는 것보다 불행하다’고 말씀하셨다”며 “경쟁은 자신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에둘렀다. 차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또는 차기 대통령 도전 여부와 관련해선 “둘 중 하나를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고 말했다.

고정애·이가영 기자, 일러스트 = 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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