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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역행(逆行)의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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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준결승1국>
○·황이중 7단(중국) ●·이세돌 9단(한국)

 제2보(17∼27)=흑▲로 막자 백△로 뻗었다. 강한 백에 다닥다닥 붙은 흑 모양이 좀 이상하지만 흑▲는 이세돌 9단의 뇌리에 깊숙이 새겨진 한 수다. 얼마 전 10단전에서 이창호 9단에게 이 수를 당했고 결과는 패배였다. 오늘 이세돌 9단이 이 수를 들고 나온 것은 그때 괴로움을 느꼈다는 방증일까. 2008년 바둑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는 이세돌 9단이 겁나게 해주겠다”던 이창호 9단의 호언(?)이 떠오른다. 하지만 2009년 시상식에서는 “혼내주지도 못하면서 괜히 그런 말을 했다”고 후회했다. 두 천재의 2009년이 벌써부터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17은 이세돌다운 여백과 함축이 담겨 있다. ‘참고도1’ 흑1로 귀를 차지하면 백2는 필연이다. 그래서 7까지가 보통이다. 그러나 하변 싸움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참고도2’처럼 2, 4를 두어 A와 B를 맞보기로 해야 할 특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가능성은 아주 작지만 그 희미한 여지마저도 살려두려는 이세돌의 의지가 17에 담겨 있다.

황이중 7단은 18에 두어 상대의 의지에 즉각 역행했다. 21의 양 협공도 물론 싫다. 그러나 그 어떤 괴로움도 상대의 의지에 순응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18로 귀를 뺏고 21을 당한 것은 그래서 필연이 된다. 황이중은 ‘이세돌’이란 존재가 주는 압박을 떨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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