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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불황에 흔들리는 음식업 고개 숙여 가까이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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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경기도 일산에서 ‘두부마니아’를 운영하는 김한춘(50)씨. 그는 원래 양계업을 했다. 달걀을 파는 규모도 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취직 자리를 찾지 못한 그는 거리에 좌판을 벌이고 과일과 야채를 팔았다.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좌판 근처에서 손수 만든 두부를 트럭에 싣고 와 팔던 사람이 두부 만드는 법을 배워 보라고 권했다. 김씨와 두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생각보다 두부 만드는 법은 쉽지 않았다. 승부를 보기로 작정한 김씨는 2005년 집 근처 공터에 컨테이너 한 대를 구해다 놓고 두부 만들기를 반복했다. 1년쯤 지나자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두부를 만들게 됐다. 아파트를 돌며 팔아 보고 식당에 가져갔더니 반응이 좋았다. 자신감이 생긴 그는 2007년 작은 두부 음식점을 차렸다.

국산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김한춘씨가 경기도 일산 자신의 식당에서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임대료 1000만원에 월세 80만원. 자금이 없어 번화한 상가가 아니라 주택가에 가게를 냈지만 “건강에 좋은 업종이니 맛만 있으면 입소문으로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고 여겼다. 음식 솜씨가 좋았던 아내가 주방을 맡고, 김씨는 두부 만들기에 전념했다.

1년간 연구해 인삼과 녹차가루를 넣어 푸르스름한 ‘인삼녹차두부’도 개발했다. 단골 손님이 많아진 그의 가게는 경기가 위축된 요즘도 잘된다. 그는 “몸에 좋은 전통 음식을 고른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소비가 줄면서 음식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업종에 따라선 불경기를 이겨낸다. 전통 음식전문점에 그런 곳이 많다. 삶거나 찌는 전통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이 웰빙 제품으로 인정받는 추세도 한몫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우리 음식이 우리 몸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신토불이(身土不二)’ 음식이 조명받고 있다”며 “창업할 때는 전통만을 내세우기보다 맛이나 판매 방식 등에 세련미를 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우리 음식이 효자=보쌈이나 감자탕 전문점도 불황에 뚝심을 발휘하는 업종. 시장에서 수익성을 검증받은 브랜드의 경우 친환경 재료를 쓰고 천연 양념으로 맛을 낸 곳이 대부분이다.

지병용(50)씨는 인천 계산동에서 ‘원할머니 보쌈’을 운영한다. 그는 “7년 정도 보쌈집을 하는데 요즘도 매출에 굴곡이 없다”며 “식재료 관리에 특히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이곳은 보쌈·족발 같은 메뉴에 조미료를 넣지 않고 버섯과 멸치로 만든 천연양념으로 맛을 낸다.

보쌈 자체가 기름기를 뺀 고기를 김치와 곁들여 먹는 것이어서 건강식품으로 꼽힌다. 감자탕 전문점 ‘행복추풍령 감자탕&묵은지’는 돼지 등뼈를 고아 만든 감자탕에 전통 숙성 방법을 쓴 묵은지를 접목했다. 서울 고척점을 운영하는 이옥남(51·여)씨는 “손님들이 ‘옛날 맛이 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2년 전 가게 문을 연 이래로 꾸준하게 장사가 되는 편”이라며 “최근엔 서울시가 전통음식 명소로 선정해줘 ‘중국인 관광객 음식점 가이드’에 실릴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보쌈집을 운영하는 지병용씨는 “전통 건강음식은 불황에도 잘 팔린다”고 말했다.


국숫집 창업도 고려할 만하다. 먹거리 파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조리와 점포 운영이 수월해 주부 창업자의 관심이 크다. ‘오송한우콩칼국수집’은 국산 콩으로 만든 면과 한우 양지를 8시간 우려낸 육수로 칼국수를 만든다. 초저가 국숫집 ‘우메마루’는 멸치와 다시마로 맛을 낸 잔치국수 한 그릇을 1500원에 판다. 전통식품의 대명사인 떡도 변신 중이다.

‘크레이지페퍼’는 떡에 고추의 매운맛을 접목한 ‘퓨전떡찜’을 내놨다. 새우·오징어·홍합과 등갈비·닭날개를 떡과 함께 볶은 ‘럭셔리 떡볶이’다. ‘떡보의 하루’는 떡케이크·떡샌드위치·떡와플을 커피와 함께 즐기는 곳이다. ‘미단’은 신세대 직장인을 위한 조랭이떡스파게티와 떡을 이용한 디저트를 판다.

◆지자체도 앞장=지방자치단체가 각 지역의 전통음식을 앞세워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전주시는 ‘전주비빔밥’ 브랜드로 국내에 30여 개 점포를 운영한다. 일본에도 가게 두 곳을 냈다. 경기도는 ‘모닝메이트’라는 브랜드로 떡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미 소비를 촉진하자는 의도에서 시작, 경기도가 실시한 떡 인증 제도를 통해 30개 업체가 선정됐다. 안동시는 한정식 사업을 준비 중이다. 양반의 고장이라는 지역 이미지를 높이고 안동반가 음식을 통해 전통을 살리자는 취지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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