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재계-권부 이권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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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러시아 재계와 권부가 국영 통신회사 스뱌지인베스트 주식 공개매각을 둘러싸고 언론을 동원, 일대 격전을 벌이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모스트그룹의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회장과 로고바즈그룹 회장이자 국가안보위 부서기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그리고 오넥심방크 회장 블라디미르 포타닌등 3인은 스뱌지인베스트사의 주식 25%에 대한 입찰이 시작되기전 비밀회동을 갖고 정부의 최저낙찰가보다 약간 높은 가격에 응찰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1차 입찰시 포타닌이 당초 약속을 어기고 최저낙찰가보다 60%나 높은 가격 (18억7천5백만달러) 을 써냄으로써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구신스키는 자신이 갖고 있는 N - TV와 일간지 시보드냐, 라디오방송 에코 모스크바를, 베레조프스키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 최대 방송사 ORT - TV등 언론을 총 동원해 포타닌은 물론 현정부의 개혁파 실세로 이번 주식매각과정을 관장한 보리스 넴초프 부총리및 아나톨리 추바이스 부총리에 대해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부여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은 또한 넴초프및 추바이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보수성향의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를 움직여 "스뱌지인베스트 주식의 매각과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는 발언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오넥심측과 넴초프 부총리는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등을 동원, "법규상 높은 가격을 제시한 응찰자에게 주식을 판매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라며 모스트와 로고바즈등 자본가그룹이 언론을 이용,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 한다고 역공을 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재벌과 정부 실력자들이 이번 입찰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는 것은 러시아의 전파송출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스뱌지인베스트의 지분을 선점하는 측이 러시아의 언론계 장악은 물론 향후 정치영향력 증대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 일각에서는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러시아의 자본가그룹을 상징하는 베레조프스키와 구신스키를 거든 것도 차기 대선에서 이들로부터 자금과 언론을 통한 지원을 약속받았기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와 재계 관계자들은 따라서 재벌간의 이번 싸움이 한 기업의 지분확보를 둘러싼 단순한 다툼을 넘어 향후 러시아의 언론계.정권에 대한 영향력 장악과 결부돼 있는만큼 쉽사리 진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모스크바 = 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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