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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즐겁게]함흥냉면(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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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냉면이 맛이 나는 여름철이다.

올해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무더위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더위 약한 이들은 고생깨나 하고 있겠지만, 반면 무더운 여름으로 해서 냉면집이 잔재미를 보고 있을 것이다.

원래 냉면이라고 하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으로 대별된다.

하지만 평양냉면은 엄밀하게 따져 여름철의 별미라기보다 겨울철의 별미이다.

여름철의 별미는 역시 함흥냉면이라 할 것이다.

평양냉면의 주 재료가 메밀이고 그 메밀의 향기는 수확기인 가을부터 겨울까지가 더욱 짙은 것에 비해, 함흥냉면의 주 원료인 고구마의 전분은 해를 묵히면 면발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해를 묵힌 여름철의 면이 더 부드러운데다가 평양냉면은 시원한 맛에, 함흥냉면은 이열치열 (以熱治熱) 로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맛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찌 되었거나 전에는 함흥냉면쪽보다 평양냉면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식성에도 유행이 있는지 함흥냉면을 찾는 애호인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그 맛을 아는 노년층.중년층은 말할 것 없이, 뜻밖에도 김치 맛도 모른다는 남녀 젊은이들이 더 이를 찾게 된 것이다.

얼얼하게 맵고,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우리의 식성에 들어맞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를 한두번 먹어보면 중독처럼 인이 박히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평양냉면의 경우는 비빔냉면보다 물냉면을 더 선호하지만, 함흥냉면의 경우는 속칭 세끼미냉면을 더 좋아한다.

새콤하고 얼얼한 것을 좋아해서 식초와 겨자, 다데기를 듬뿍 치고 질기리만치 쫄깃한 면과 이따금 씹히는 새콤한 회맛을 즐기면서 구수한 육수를 한모금씩 훌훌 마시며 땀을 내가며 드는 것이다.

아무리 면이 질겨도 가위질을 하지 않는다.

면이나 육류는 쇠붙이가 많이 닿으면 그럴수록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비빔면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비로소 육수를 붓고 물냉면을 만들어 드는데 그 육수물을 마시는 것 또한 더없이 후련한 맛이다. 여기 수록하는 냉면집들은 주로 식도락 기행을 시작한 이후 맛있다고 소문난 집들을 직접 찾아가서 시식해본 집들이다.

♠서울 - 오장동 함흥냉면 원조집들 서울에서 함흥냉면이라고 하면 으레 오장동을 연상하리만큼 그 일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함흥냉면의 원조집들이 나란히 있다.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 함흥냉면' '오장동 신창면옥' 집등이 그것이다.

'흥남집' 과 '함흥냉면' 집은 1953년 무렵 현 위치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업하여 아직까지 제자리를 지키며 3대에 걸쳐 성업중에 있다.

창업주들이 1.4후퇴때 피난을 와서 인근 중앙시장의 실향민을 상대로 조그마한 골방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 번창을 하여 이제는 3층짜리 건물의 대형업소로 발전하였다.

함흥냉면의 맛의 비결은 질 좋은 면발에 있지만 무엇보다도 고춧가루와 참기름의 맛에 있다 하여 질 좋은 것만 쓰고 있고, 회냉면.섞임냉면.비빔냉면 전문으로 그 어느집이나 원조집답게 뛰어난 맛을 내고 있다.

이 두 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신창면옥' 은 개업 자체는 두 집보다 뒤져 있으나, 조리 경험이 40여년에 이른다.

후발업체이니만큼 맛을 내는데에 온갖 성의를 기울여 앞서의 두 집의 맛에 뒤지지 않는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어느 업소나 주차가 용이하고 신용카드도 통용되지만 첫째집은 제2.4 수요일, 둘째집.셋째집은 제2.4월요일에 쉰다.

♠서울 '강남 - 신사면옥' 도산공원 옆 씨네하우스 건너편 대로변에 위치한 '신사면옥' 은 강남 일대에서 함흥냉면으로 소문난 명점이다.

순수한 고구마 전분을 제주도에서 직접 수송해 오며, 손으로 반죽을 하고 면발을 뽑아낸다.

점심용의 면은 아침에 반죽을 하고, 저녁용의 면은 점심이 끝난 다음에 반죽을 해 면발이 굳어지지 않아 맛이 떨어지는 일이 없다.

물냉면은 사골.잡뼈.양지.사태와 무.양파.마늘등의 야채를 달인 육수가 더없이 구수한데, 전혀 화학조미료는 가미하지 않는다.

이밖에 사태살과 절인 오이가 올라가는 비빔냉면, 세끼미냉면도 있다.

연중 무휴. 넉넉한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신용카드 가능.

♠송추 - '송추 가마골' 구파발에서 일영과 장흥유원지를 거쳐 의정부로 빠지는 송추가도 도로변 좌측에 있는 '송추 가마골' 은 유원지 일대의 많은 음식점 가운데서 그 규모나 분위기, 맛에 있어 단연 뛰어나 소문이 난 집이다.

이 집의 주 메뉴는 육질이 좋은 갈비구이이지만, 못지않게 함흥식 냉면의 맛이 뛰어나고 독특해서 평판이 매우 높다.

대형 업소인데다가 공급물량이 많아 봄철에 몇 천부대의 녹말을 미리부터 비축을 해둘 정도이다.

녹말은 해를 묵혀야 면발이 더 부드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량의 물량을 주문하기 때문에 보다 양질의 물품을 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외 업장까지 갖춘 대규모 업소이지만 여름철 성수기나 주말이면 자리차지가 어려울 정도이며 그 맛을 한번 보기만 하면 이처럼 소문이 난 까닭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연중 무휴. 넓은 주차공간이 있으며 신용카드 가능.

♠속초 - '함흥냉면' 속초시 중심가 재원극장 근처에 있는 이 집은 6.25전쟁 직후 1.4후퇴때 함흥에서 피난온 실향민이 조그맣게 개업을 한 후 40년도 넘게 함흥냉면 하나만을 고집해온, 함흥냉면에 관한 한 남한땅의 원조이다.

자가에서 반죽하는 면을 내놓고 있지만 오랜 역사가 있으므로 그 맛도 독특하며 종류도 함흥냉면.쇠고기냉면.곱빼기냉면.온면등 다양하다.

함경도 출신의 창업주는 작고를 하였지만 그 부인과 자녀들이 대를 이어 영업을 하고 있는데, 더도 덜도 아닌 순수한 함흥냉면의 오리지널한 맛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연중 무휴.

♠전주 - '원조 함흥냉면' 예부터 전주는 맛과 멋의 고장으로 꼽혀왔다.

그 전주에는 특히 비빔밥이 유명하다.

전주의 비빔밥과 함흥의 냉면은 비빔 자체에 공통점이 많아 이 집이 함흥냉면의 맛으로 소문이 난 까닭에 수긍이 간다.

전풍백화점에서 중앙시장쪽으로 1백 정도에 위치해 있는 이 집은 고풍스런 한옥에 현대미를 살려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 집의 냉면은 비빔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양념장에 비법이 있다는데, 고추장 맛으로 전국적으로 소문난 순창이며 임실.고창.진안등 전국의 명성을 떨치는 양념재료들이 풍부한 고장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직한 양념으로 비벼낸 쫄깃쫄깃한 면발에다가, 전주의 10대 진미로 치는 열무김치가 잘 어루러져 그 맛이 소문이 난 까닭이다.

북적대는 시내 중심에 고향집같은 전통한옥의 분위기도 좋아 호남지역 일대에서는 가장 오래된 함흥냉면의 원조라 할 만하다.

연중무휴이나 명절은 쉬며, 신용카드는 사용이 안된다.

♠제주 - '함흥면옥' 제주는 지리적으로 함흥과는 거리가 멀지만 1.4후퇴후 제주도까지 피난을 내려와 정착해 있는 함경도 출신 실향민도 많고, 함흥냉면의 주 원료인 고구마 전분의 첫째가는 특산지여서 함흥냉면이 일찍부터 정착되어 왔다.

이 가운데 제주시 구 시가지 중앙로 네거리에 있는 '함흥면옥' 은 30년 가까이 함흥냉면 전문점으로 소문난 순수하고 전통있는 대표적 업소이다.

또 한집, 제주시 연동 신제주 그랜드호텔 근처에 있는 '풍전' 은 육질 좋은 대단위 갈비구이 전문점이지만 원자재가 제주산이어서 면발이 좋은 함흥냉면으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

이밖에도 함흥냉면의 명문집은 도처에 있지만 지면 관계로 생략하고 위의 표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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