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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기피증' 등 열대야가 만든 신풍속도 많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더위를 견디다 못한 주부 이정아 (李正雅.27.서울양천구목동) 씨는 1주일전부터 남편과 함께 아예 에어컨이 있는 친정으로 거처를 옮겼다.

에어컨이 없는 신혼집에서 이번 열대야를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어 내린 결정. 처음엔 쑥스러워 하던 남편도 아침마다 처가를 나서면서 "마치 신혼여행에서 갓 돌아왔을 때 같다" 며 오히려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열흘 넘게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초특급 열대야' 가 극성이다.

지난달 24일 이후 서울지방의 새벽 최저기온이 웬만한 초여름 날씨와 맞먹는 섭씨 25도 (열대야 기준온도) 를 훌쩍 넘기고 있는 것. 이때문에 가정마다 더위 탈출을 위한 진기한 아이디어 속출과 함께 한여름밤의 새 풍속도가 생겨나는가 하면 병원엔 목 근육통이나 안면신경마비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집안에선 이미 안방과 거실.마당의 구분이 없어진지 오래다.

거실에만 에어컨이 있는 집에선 온가족이 거실에 모여 잠을 청하고 어떤 가정은 에어컨 달린 승용차를 타고 야간 드라이브를 즐기는가 하면 대형할인점이나 편의점등을 찾는 '올빼미 쇼핑족' 이 되기도 한다.

직장인들이 시원한 회사에서 퇴근을 미루거나 출근을 훨씬 빨리 하는 것도 삼복중 새 풍속도로 자리잡았다.

더위 탓에 평소 즐거움으로 삼던 '퇴근후 소주 한잔' 도 이제 귀찮은 일중의 하나가 돼버렸다.

더위탈출 바람과 함께 열대야 효과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각 병원이다.

더위로 인한 설사.고열.땀띠 환자 외에 최근 등장한 병이 경추부염좌 (목 근육통)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치면서 소파에서 잠자거나 베개대신 팔을 베고 자다 발생하는 목 근육통으로 자고 일어났을 때 목이 삔 것처럼 뻣뻣한 증상이 특징이다.

서울강남병원 신경외과 하영일 (河榮一) 과장은 "평소엔 찾아보기 힘든 목 근육통 환자가 요즘에는 매일 10여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올여름 이런 환자들이 많은 것은 특이한 현상" 이라고 했다.

목 근육통과 함께 얼굴이 굳거나 입이 비뚤어지는 안면신경마비 환자도 늘고 있는데 낮에 더운 밖에서 땀을 흘리며 활동하다 밤에 에어컨.선풍기 바람을 쐬며 자거나 찬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잘 경우 발생률이 높은 병. 서울동작구 현대한의원의 경우 1주일전부터 하루 4~5명의 환자가 찾고 있으며 다른 병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밖에 서울압구정동이나 홍대앞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선 길가 공중전화부스에 전화를 걸려는 사람이 없는 반면 에어컨이 작동되는 편의점내의 전화앞엔 기다랗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또 밤늦도록 영업하는 호텔.대형할인점등이 때아닌 호황인 가운데 H호텔등 대형 호텔 커피숍은 오후10시가 넘어서도 줄을 서 자리를 기다릴 정도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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