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민박집 노부부의 따뜻한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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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2년전 여름 우리 가족은 동해를 보러 가기로 의기 투합해 차에 코펠.버너를 싣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강원도 한계령과 강릉 오죽헌에서 잠깐 여행객의 가벼운 정취를 맛보며 흘러가다 어느 조그마한 어촌에서 하룻밤 쉬어 가기 위해 민박을 찾아 짐을 풀었다.

비싸지만 민박하기에 편한 멋진 집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박다운 맛을 느끼려면 허름한 곳이 안성맞춤이라는 남편의 권고 아닌 압력에 못이겨 가족들은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갔다.

아이의 손을 잡고 백사장을 맨발로 거닐다가 누워보기도 했고 모래 장난도 해보았다.

가족들은 한참 그렇게 백사장에서 놀다가 별이 총총한 하늘을 뒤로 하고 민박집으로돌아왔다.

그때 나이 지긋하신 민박집 주인 내외가 대청마루에 앉아 소주잔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작하고 계셨고 별일 없으면 문어안주에 술이나 한잔 하자면서 우리 부부를 부르는게 아닌가.

주인 내외는 시설이 좋은 다른 민박집을 제쳐두고 이런 곳으로 일부러 찾아와줘 고맙다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집안에는 우리 가족과 주인 내외를 제외하곤 손님이 전혀 없었다.

마당에 피워 놓은 모깃불 연기에 감자를 구우면서 잠든 아이의 머리를 내 무릎에 올려둔 채 주인 아저씨의 구수한 입담에 귀를 기울였다.

고향의 시골집 같은 분위기에 젖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주인집 내외와 우리 부부의 조그마한 소주파티는 한참동안 이어졌다.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나 주인 아주머니가 끓여주신 조개탕으로 속을 풀고 우리는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에 여기 오면 꼭 다시 들르겠다는 인사를 건네면서 떠나려는 순간 주인 아저씨가 차의 유리를 톡톡 치면서 잠깐 내려보라고 했다.

차 유리 안으로 들어온 것은 아저씨가 직접 따 건조시켰다는 미역 한 두름. 그저 스쳐지나가는 민박 손님에 불과할 뿐인 우리에게 따뜻한 정 한아름을 안겨주신 그분들이 무척 보고 싶다.

지금도 그곳에 여전히 계실까. 올 여름에는 꼭 그분들을 다시 찾아가 보리라. 문혜경〈서울서초구반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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