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놓고 중국· 미국 외교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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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프리카와 중남미를 돌며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던 중국과 대만이 이번에는 캄보디아에서 뜨거운 접전을 벌이고 있다.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를 지원, 중국을 누르고 외교적 승리를 올리려던 대만은 훈 센 제2총리의 내전승리와 라나리드 총리의 해외망명으로 급기야 지난 21일 캄보디아내 대표부를 폐쇄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만노동위원회는 이에 맞서 23일 캄보디아 노동력의 대만 수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는등 대만.캄보디아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4일. 이미 캄보디아 정권을 장악, 현재 반대파 숙청에 나서고 있는 훈 센 제2총리가 대만의 군장성과 상인들이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라나리드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고 폭탄선언한 것. 지난 5월 라나리드 측근 장성들이 대만을 방문해 대만 군부와 비밀회합을 가진데 이어 대만은 중장급 장성과 황푸더 (黃福得) 등 상인들을 이용, 50만달러의 전차포등 각종 무기를 라나리드에게 제공했다는게 훈 센의 주장이다.

훈 센에 따르면 대만의 목적은 바로 훈 센을 제거한 뒤 라나리드에 의해 대만.캄보디아간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은 이같은 사태에 대해 쾌재를 부르고 있다.

중국은 대만대표부의 폐쇄조치에 대해 "이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행동" 이라며 찬사를 보내는 한편 당초 친 (親) 베트남 성향으로 인해 사이가 나빴던 훈 센과의 관계개선을 부쩍 서두르고 있다.

이 때문에 캄보디아에 5백여개의 공장을 설립하고 9천만달러를 투자, 최대투자국으로 행세하는 대만이 발끈한 것은 물론이다.

대만은 오히려 훈 센의 배후엔 중국이란 검은 손이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중남미 방문길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잠시 기착한 장샤오옌 (章孝嚴) 대만외교부장은 23일 훈 센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대만을 모욕하고 있다면서 이에 마땅한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분개했다.

중국세가 비교적 약한 캄보디아에서 그 틈새를 노려 외교적 수세를 탈피해 보려던 대만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중국과의 외교전에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홍콩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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