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남북 군사 긴장완화 돌파구 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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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2일 끝난 남북 장성급 회담 실무접촉의 합의에 따라 양측 간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이 오늘부터 가시화한다. 서해 5도 인근 해상에서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양측 경비함정이 일원화한 주파수로 무선통신을 교환한다. 또 모레부터는 군사분계선상의 모든 선전활동을 중지한다. 전광판과 돌 글씨 등 각종 선전수단도 오는 광복절까지 단계적으로 철거된다.

이런 조치들은 50여년 동안 지속된 남북 간 군사적 대치상황을 완화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그 역할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새로운 군사정책에 따라 한반도의 안보상황은 앞으로 예측불허의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감축에 대해 "북한 공격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를 보면 북측도 한반도 안보지형의 변동을 우리 못지않게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남북한 군사 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긴장완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곧바로 이행하는 것은 바람직한 진전이 아닐 수 없다. 주한미군은 감축되는데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된다면 불안감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근본적이고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여전히 중무장한 병력 100여만명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갓난아이의 걸음마에 불과하다. 따라서 남북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긴장과 불신을 해소할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1992년 발효된 남북 기본합의서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군사연습의 통보와 통제, 공격용 무기의 제거 후 단계적 군축 등 실질적인 긴장완화를 위해 논의해야 할 모든 방안이 포함돼 있다. 우리는 정부가 남북 기본합의서에 규정된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을 북한에 제안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기를 촉구한다. 군사력 비용 감축이 북의 경제난을 해소하는 지름길임을 북한 당국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