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수입불가 왕자웨이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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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늘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표정을 읽기 힘든 왕자웨이 (王家衛) 감독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21일 서울에 도착, 신라호텔에서 기자와 단독 인터뷰 시간을 가진 왕감독은 "나의 작품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있는데 설명을 하게 되면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폭을 좁혀버릴 수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수입불가판정과 관련해서는 조심스럽지만 차분하게 많은 말을 해주었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 수입불허 판정에 대한 느낌은.

▶한국측 에이전트사인 모인그룹으로부터 1차 수입심의에서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농담인 줄 알았다.

2차 심의결과를 들었을 때도 농담인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 서울에 와 있으면서도 모든 게 농담같다는 생각이 든다.

- 동성애가 문제가 되었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 는 게이영화가 아니다.

그냥 등장인물이 우연히 동성애자인 사랑이야기일 뿐이다.

내가 영화에서 그리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간의 '관계' 이지 '동성애' 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회에 동성애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인데 그것 때문에 상영을 금지시킨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이전에 많은 동성애소재 영화들이 개봉됐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가 거절당한 것은 백인들간의 동성애는 거리감이 덜 느껴지지만 두 동양남자 사이의 동성애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 홍콩이나 대만에서는 별 문제없이 개봉되었나. ▶홍콩이나 대만에서는 연소자관람불가에 해당하는 등급을 받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성인관객을 대상으로 정부가 이건 나쁜 영화니까 보지 말라고 한다는 것도 사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 영화에 두가지 편집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칸영화제와 홍콩.대만에서 상영했던 편집판이 약간 길다.

그리고 올연말 영화가 개봉되는 이슬람국가들을 위해 영화 시작부분의 정사장면을 약간 줄인 짧은 편집판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짧은 편집판을 상영할 예정이었다) .

- 동성애자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난 그런 질문을 무척 싫어한다.

질문 자체에 동성애자를 뭔가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편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 지난 2년간 홍콩에서 게이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

홍콩이 중국으로 돌아가면 검열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만들 수있을 때 만들고 보자는 생각이 많이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은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그만큼 동성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 중국의 영화검열이 앞으로 홍콩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미 2~3년 전부터 영향을 미쳐왔다.

그건 정치적인 영향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인 차원에서의 영향이다.

왜냐하면 중국대륙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영화가 개봉되기 위해서는 검열에 거슬리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 많은 홍콩의 영화인들이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

- 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무대로 택했는가.

▶사실 몇 년동안 모든 사람들이 내게 홍콩영화의 장래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해왔다.

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해줄 수없었기 때문에 그럴바엔 차라리 홍콩을 떠나서 뭔가 다른 작품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 팀은 내가 이전에 한번도 해보지 않은 소재, 그리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래서 홍콩에서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택하게 됐다.

내가 아르헨티나 작가 마뉴엘 피그의 소설을 좋아하고 마라도나의 엄청난 팬이라는 사실도 작용했다.

사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의 한국개봉이 이루어졌더라면 그는 주연배우인 장궈룽 (張國榮).량차오웨이 (梁朝偉) 와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 등 가족같은 자신의 팀과 함께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왔다.

22일 동숭시네마텍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 그는 24일 홍콩으로 돌아간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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