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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재계새별>18. 종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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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약업보국 (藥業報國 : 우수 의약품을 개발해 인류건강을 지키며 복지사회 구현에 이바지한다)' . 종근당이 창업 이후 56년간 지켜온 기업 이념이다.

'당신은 잠들어도 맥박은 뛰고 있습니다.

당신이 주무시는 한밤에도 종근당의 연구실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 69년 국내 최초의 기업광고로 화제가 됐던 종근당의 광고에도 이같은 기업정신이 담겨있다.

종근당의 창업자인 故이종근 (李鍾根) 회장은 한마디로 약과 함께 한평생을 보냈다.

1919년 충남 당진군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고 李회장은 경성직업학교 기계과 졸업후 철공소 견습공, 전기상회 사동, 정미소 쌀배달등을 하며 사회생활을 배웠다.

그러던중 이종 형 (兄) 이 약국을 경영하며 돈을 버는 것을 보고 39년 약국외판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41년 자신이 모은 돈 15원에 일수돈 50원을 빌려 당시로서는 쌀10가마니 값에 불과한 자본금으로 서울 아현동에 '궁본약방 (宮本藥房)' 이라는 4평 규모의 도매약국을 차렸다.

오늘날 종근당의 뿌리가 된 가게였다.

43년 일본 정부의 기업정비령 때문에 약국 문을 닫아야했던 그는 해방뒤인 46년 '종근당약방 (鍾根堂藥房)' 이란 간판을 걸고 재개업했다.

약만들기에 일생을 바치기로 한 이상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내세우자는 것이었다.

약도매상으로 기반이 잡혀가던 48년 고 李회장에게 사업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당시 소화제로 인기를 끌던 활명수 50만~60만병을 전국의 도매상에 팔았는데 제조업체로부터 모조품이라고 고발당했던 것. 무혐의로 최종 판결은 났지만 李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남의 약을 팔아 괄시를 받는 것보다 스스로 약을 만들어야겠다' 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다음해인 49년 대광화학연구소를 설립, 종근당의 제약 1호인 '다이아졸 연고' 를 내놓았다.

68년 종근당은 클로람페니콜이란 항생제로 당시 국내 업체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FDA (美식품의약국) 공인을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이는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 완제품을 만들어 팔던 국내 제약업계가 종합제약업으로 시각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종근당은 이후에도 FDA공인을 꾸준히 획득, 현재 국내 제약업체들이 획득한 FDA공인 의약품 15개중 12개를 보유하고 있다.

창업주 이종근 (李鍾根) 회장의 타계로 93년 경영권을 이어받은 이장한 (李章漢.46) 회장은 선친이 다져놓은 기반위에 21세기 종합건강복지문화그룹을 이룩한다는 경영비전을 세워놓고 있다.

고 李회장은 장남인 李회장에 대해 엄격한 교육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李회장이 대학시절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며 부친에게 경비를 부탁하자 돌아온 답은 '벌어서 가라' 였다.

76년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李회장은 회사경영보다는 언론인이 되고 싶어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미 (渡美) , 미주리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했다.

졸업후 미국에서라도 기자생활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건강이 나빠진 선친의 요청으로 李회장은 자신의 꿈을 접고 86년 귀국했다.

李회장이 처음 경영수업을 받은 곳은 자본잠식 상태에 있던 지방의 조그만 계열사인 안성유리. '나한테 경영을 배우지 말고 계열사를 맡고 있는 창업공신들에게서 배우라' 는 선대 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어 합작 계열사인 '로슈' 와 '롱프랑' 에서 선진 제약회사와의 파트너십을 익히다 선친의 타계로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李회장은 취임 이후 "선진 외국의 제약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제약업을 핵으로 업종전문화를 이룩해야 한다" 는 경영방침을 줄곧 강조해오고 있다.

이를위해 李회장은 그룹을 ▶생활건강사업군▶환경복지사업군▶정보문화사업군으로 나눠 의료기기.레저스포츠.실버산업.정보통신사업에 적극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李회장은 평소 "신약 (新藥)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12년 이상의 시간과 1천억원의 연구개발비가 필요하지만 성공확률은 1.125%에 불과하다" 는 통계를 자주 인용한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약 연구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李회장은 종근당이 강점을 보이는 발효와 합성부문에 집중투자할 계획이다.

포화상태에 이른 내수시장에서의 과당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종근당에는 계열사 사장단회의와 종근당 운영위원회등 두 개의 핵심 의사결정기구가 있다.

매분기마다 열리는 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는 각 계열사별 사업실적과 신규사업에 대한 검토를 한다.

전무급 이상 임원이 참석해 매주 한차례 열리는 운영위원회에서는 주력사인 종근당의 업무가 논의된다.

李회장은 이들 회의에 참석해 참석자들의 의견을 듣는다.

계열사 경영도 사장단에게 거의 전권을 맡긴다는게 李회장의 생각이다.

李회장은 또 직원들에게 '고객과의 신뢰구축' 을 강조한다.

"지난 56년간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종근당이 있다" 는 말도 자주 한다.

종근당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은 김충환 (金忠煥) 사장이다.

서울상대 출신으로 동국제약 사장을 거쳐 83년 종근당에 입사, 영업본부장과 전무를 거쳤다.

李회장을 보필해 종근당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유리병을 만드는 안성유리의 남치현 (南致鉉) 사장은 62년 종근당에 입사해 23년간 주로 경리파트에서 일했던 경리통. 84년 당시에는 낙후돼 있던 유리병 제조업체를 맡아 내실있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의약품 제조회사인 한국롱프랑로라의 김선중 (金善中) 사장은 서울대 약학과를 나온 약사 출신의 제약전문경영인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을 거쳐 69년 종근당 무역부에 입사해 주로 해외 업무를 담당했다.

종근당산업㈜의 한국명 (韓國明) 사장은 문화공보부 전문위원과 CBS보도.편성국장을 거친 언론인 출신이다.

94년 대전지역 민방사업 신청을 했을 때 '민방설립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됐다.

건강식품 제조업체인 종근당건강㈜의 박재금 (朴在昑) 사장은 68년 종근당 영업부에 입사해 30년을 영업현장에서 보낸 영업전문가다.

종근당이 건강식품사업에 진출하며 사장을 맡았다.

종근당의 매출은 93년 1천3백억원에서 2세승계 이후 크게 늘어 97년 2천9백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개발중인 8종의 신약 가운데 2~3개가 결실을 맺을 것으로 예상되는 2000년의 매출은 5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종근당은 내년8월 충남 천안의 4만5천평 부지에 짓고 있는 아시아 최대의 최첨단 의약품 공장으로 이전하는 것을 계기로 제2의 도약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3만평 규모의 서울 신도림동 공장에는 아파트를 건설, 분양할 예정이다.

해외사업으로는 결핵치료제를 생산하기 위해 스위스 '노바티스' 사와 합작으로 올 하반기 인도에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며, 미국.유럽등 선진 다국적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첨단 위궤양 치료제인 오메프라졸제제등의 원료및 완제품 수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종근당은 지난해부터 'SPURT 2000' 이라는 경영혁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제약시장이 개방돼 다국적 기업들의 국내 제약회사 매수합병 (M&A)가능성도 있는만큼 경영환경 변화에 적극 대처하자는 것이다.

좁은 시장 (95년 3조6천억원) 과 많은 회사 (4백여개) 로 경쟁이 치열한 국내 제약업계 환경에서 빠듯한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아야 하는게 종근당이 안고 있는 과제다.

이수호 기자 (다음은 진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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