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악마주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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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녀가 내 뼈마다 온통 골수를 빨아내고, /내가 사랑의 키스를 돌려주려 나른한 몸을/그녀 쪽으로 돌렸을 때, 눈에 띈 것은/오직 고름으로 꽉찬 끈적끈적한 가죽푸대뿐!" '악마주의 (diabolism)' 의 대표적 시인으로 꼽히는 샤를 보들레르의 '흡혈귀의 변신' 이라는 작품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 작품은 불후의 명작으로 사랑받는 시집 '악의 꽃' 초판 (1857년)에 수록됐다가 시집이 반종교적이며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기소돼 법의 심판대에 오른 끝에 강제삭제된 6편 가운데 하나로도 유명하다.

'악마주의' 는 본래 19세기 중반부터 서유럽에서 싹튼 순수예술사상이었다.

보들레르를 비롯,에드거 앨런 포와 오스카 와일드 등이 심취했던 이 사상은 모든 통속적 도덕과 양식을 거부하는 속성 때문에 세기말적 예술형식으로 이단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탐미 (耽美) 혹은 유미 (唯美) 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 깊이 심취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본질은 심각하면서도 신비적이며 전율할만한 쾌감을 주기도 하면서 인간성의 감춰진 측면을 돋보이게도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예술사상에 '악마' 란 끔찍한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 본질적 요소인 '강렬한 자극' 과 무관하지 않다.

강렬한 자극을 얻게 하기 위해서는 '악마성' 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악' 그 자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마와 같은 강한 성격으로 강렬한 자극을 긍정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대예술, 특히 대중예술에 있어서의 '악마주의' 는 '악' 그 자체를 소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랩' 등 대중음악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흑인 등 소외계층이 대부분인 그들은 90년대를 '분노의 시대' 라 명명하면서 '악마주의' 의 노래들만이 그 '분노' 를 사그러뜨릴 수 있다고 부추긴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에는 귀신.해골.살인.자살.강간.마약 등 온갖 악마성이 판을 친다.

그런 노래들이 은밀하게 우리 청소년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왔다.

94년 어떤 노래 테이프를 뒤집어 틀으니 "피가 모자라…배가 고파…" 로 들리더라는 소동도 그중의 하나다.

편법으로 수입돼 대량유통돼 온 '악마주의' 외국음반들에 마침내 검찰의 철퇴가 떨어졌다.

청소년의 정서를 더 이상 '악' 에 물들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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