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경제성장 벽에 부닥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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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체코 즐린시에 소재한 신발회사 스비트는 한 때 연간 4천만켤레의 신발을 생산, 동구권은 물론 캐나다에까지 수출했던 회사다.

그러나 요즘은 아무도 이 회사 신발을 사려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체제하와 비교해 볼 때 스비트의 생산시설이나 경영행태는 거의 바뀐 게 없다.

이 회사는 지난 89년 종업원을 7천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였지만 생산량이 90%나 감소한 상황에서 현재의 종업원수도 너무 많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체코는 동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였다.

체코는 폴란드식의 충격요법이나 헝가리식의 긴축정책 없이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지름길을 발견한 것처럼 보였다.

프라하에는 체코가 이미 서구 부자나라의 일원이 된 것인 양 떠드는 젊은이들이많다.

그러나 시장경제에 대한 환상의 이면에는 또다른 체코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다.

스비트처럼 공산정권 시절에 날리던 회사들은 여전히 당시의 경영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실업률은 4%에 못미치지만 이는 기업들이 손실을 감수하면서 집에서 노는 수만명의 직원들에게 계속 임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코에는 외제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상점에는 화려한 외제품이 보기좋게 전시된 반면 체코 제품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다.

그 결과 체코의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성장은 정체되고 주가지수는 지난해 이후 20%이상 떨어졌다.

많은 투자자들이 보따리를 싸서 이웃 폴란드나 헝가리, 루마니아등지로 떠나고 있다.

UBS증권의 동유럽분석가인 제임스 오츠는 "서구투자자들이 이제 체코경제의 실상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고 말한다.

다행히 체코는 당장 개혁이 후퇴하거나 빈곤과 저항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지는 않다.

대외부채나 신용수준은 서구 국가와 비교해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체코는 4년만에 처음으로 긴축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 입장이다.

분석가들은 체코가 임금인하와 지출삭감등 개혁조치를 취한다면 내년부터는 침체에서 벗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난관이 많다.

부실기업들을 정리하고, 종업원들을 더 줄이고 은행의 부실기업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스비트가 체코경제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면 바로 옆의 산업용 공구회사 ZPS즐린사는 몇가지 해법을 보여준다.

ZPS도 처음에는 스비트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ZPS는 외국공구회사와 손잡고 신기술을 도입하는 한편 조직을 대폭 정비하고 미국수출에 주력했다.

이 회사는 지난 89년 8천5백명에 이르던 종업원을 1천5백명으로 줄이는 대대적인 감원을 단행했다.

지난해 ZPS는 생산성증가율이 임금상승률을 두배나 앞질렀고 순익도 두배가 늘었다.

이 회사의 한 간부는 "정부에 해결을 기대한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며 "문제는 내부에서 풀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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