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입김에 재정지출 줄이고 감세 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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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갈수록 깊어지는 경기침체에 맞서기 위한 미국 정부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지난주 미국 상원에서 민주당 의원과 공화당 중도파 의원이 합의한 82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이 9일 예비표결을 통과한 데 이어 10일 본회의 표결을 거쳐 백악관에 제출될 전망이다. 하원과의 조율을 통해 단일 법안이 마련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 그동안 논란을 거듭했던 미국의 경기부양책이 드디어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여기에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수차례 발표를 연기했던 ‘금융 안정 및 회복계획’(Financial Stability and Recovery Plan)도 윤곽이 드러남에 따라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감세 규모 늘려=상원의 법안은 지난달 하원을 통과한 8190억 달러 규모의 법안과 규모 면에선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법안 내용은 다소 달라졌다. 하원 안보다 세금 감면 폭을 990억 달러 늘린 반면 실업급여·건강보험 등 재정지출 예산은 770억 달러 줄인 것이다. 직접적인 지출보다는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공화당 의원들의 주장을 반영한 결과다. 이에 따라 주택 구매자에게만 주려던 세금 감면 혜택을 상원에선 자동차 구매자로 확대했다. 반면 하원에서 5억 달러로 책정했던 미 항공우주국(NASA) 지원금이 4억5000만 달러로 깎이는 등 재정지출이 확 줄었다. 민주당은 16일 ‘프레지던트 데이’ 이전까지 법안에 대통령 서명을 받겠다는 계획이다.


◆지원 규모 여전히 논란=그러나 대통령에게 제출할 상·하원 단일 법안을 만들기까지 또 한번의 난항이 예상된다. 감세 규모, 지방정부 지원 등에 대한 입장 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 법안에 대해 “국가 부채를 늘려 미국 경제에 해를 끼쳐 다음 세대에 큰 짐이 될 것”이라며 공식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 10일 표결을 앞두고 일부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선 “낭비법안이지 부양법안이 아니다” “아무런 실효가 없을 이 법안에 대해 누군가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외쳐야 한다”는 조롱까지 나왔다. 이에 9일 취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연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이 발효되지 않으면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수백만의 미국인이 고통받게 될 것”이라며 공화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배드뱅크 재검토=재무부가 마련한 ‘금융 안정 및 회복 계획’은 여러 부분에서 처음 모습과 달라졌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금융권의 부실자산을 떠안을 배드뱅크 설립 문제다. 당초 정부 재원으로만 설립하려 했으나 민간 투자자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재 정확한 가격 산정조차 할 수 없는 부실자산을 3500억 달러 남아 있는 부실자산매입계획(TARP) 자금으로만 충당할 수 없을 것이란 계산이다. 아이삭 베이커 재무부 대변인은 “경기부양안만으로 모든 현안을 풀 수 없다”면서 “기업과 가계의 신용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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