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석기, ‘원칙 사회’를 위한 거름 돼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석기 경찰청장 후보자가 결국 사퇴했다. 우리는 그의 거취는 한국 사회 이성(理性)의 숙제이며 ‘선 진상규명, 후 조치’가 이성에 맞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검찰 수사결과 용산사건에 있어 김 후보자나 경찰의 책임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결과로 볼 때 경찰의 작전에 아쉬운 점도 있다고 했지만 이것이 사건의 본질을 바꾸거나 경찰의 책임론에까지 연결되는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 경찰은 법, 질서, 그리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김 후보자의 임명과 인사청문은 그대로 유지되는 게 정도(正道)다.

자진사퇴라고 하지만 이는 사실상 대통령과 정권이 결정한 일이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에게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사건의 충격으로 볼 때 도의적·정치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당한 공권력의 보호라는 원칙과는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의 이런 판단이 원색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태 초기부터 선 진상규명이라는 원칙을 지켜 왔다. 이는 지난해 여름 촛불사태 때 도심을 무법천지로 방치했던 무책임으로부터 많이 개선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농민 2인의 사망에 밀려 허준영 경찰청장을 강제로 사퇴시키거나, 평택에서 군인이 시위대에 폭행당하게 방치한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진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력했다고 해서 원칙의 고수에서 실패한 것이 다 해명되지는 않는다. 특히 이번에 또 공권력 책임자가 ‘문책성’으로 물러남으로써 여러 부작용을 남기게 됐다. 대통령은 결국 반대세력의 공세로부터 공권력 책임자를 지켜내지 못해 권위에 상처를 입었다. 경찰 등 공권력 집행기관은 다시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사기저하를 겪게 됐다. 김 후보자는 사퇴회견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이 강경과 과잉으로 매도당하거나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석기’는 미완(未完)의 원칙으로 남게 되었다. 대통령과 정치권, 시민세력은 그를 성숙한 사회, 이성적인 사회를 위한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재개발 보상 등 각종 사회갈등을 보듬고, 서민의 생활을 살피면서도 폭력시위는 엄단하고 경찰의 공권력 집행을 보호하는 그런 반듯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야당은 그의 사퇴를 ‘용산 투쟁’의 승리라고 여겨선 안 된다. 특검 같은 무책임한 주장을 접고 이젠 국회 법안심의에 임해야 한다. 장외투쟁의 과격하고 공허한 외침은 떠나는 ‘김석기’의 등 뒤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