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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BMW 떠나는 디자인 혁명가 뱅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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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독일 자동차업체인 BMW의 디자인 총괄 사장 크리스 뱅글(53·사진)이 최근 사임했다. 후임으로는 뱅글의 수제자로 BMW·롤스로이스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수석 디자이너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45)가 임명됐다.


뱅글은 2000년 이후 세계 자동차 업계에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친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미국인으로서 처음 BMW 디자인 총괄을 맡았던 그는 “디자인은 좋았는데 판매에 실패한 제품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뱅글은 자동차 디자인학교로 명성이 난 미국의 ‘파사데나 디자인아트센터’를 졸업했다. 이후 오펠·피아트 자동차에서 일했고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1992년 BMW에 합류한 그는 17년 동안 ‘자동차 디자인계의 이단아’로 불렸다. 독특한 화법으로 찬사와 혹평을 함께 받았던 것이다. 그의 대표작은 2001년 출시된 BMW7 시리즈다. BMW가 추구해온 단순한 직선의 아름다움 요소를 파괴한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대형차다운 위엄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지만 치켜 올라온 엉덩이를 연상시키는 트렁크 디자인은 ‘뱅글 버트(엉덩이)’라고 불리며 혹평도 쏟아졌다. BMW 동호회 회원들의 암살 협박까지 받았다. 하지만 7시리즈는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은 물론 중국·한국 등 신흥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후 이 디자인은 벤츠·현대차 등 세계의 거의 모든 자동차업체들이 벤치마킹했다.

그는 5시리즈, 3시리즈까지 모두 혁신을 시도해 ‘드라이빙 머신’이라는 BMW의 디자인 철학을 새로 썼다. BMW는 뱅글의 이런 디자인을 앞세워 성장을 지속했다. 2005년에는 벤츠 판매량을 앞지르며 럭셔리(최고급) 자동차 업계 1위에 올랐다.

그는 늘 “디자이너는 사람이 보기에 좋고 소비자가 사용하기 편하고 제조업체가 만들기 쉬운 디자인을 하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뱅글은 이임사에서 “자동차업계를 떠나 나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뱅글이 현대차로 올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대차는 2007년부터 해외에서 새로운 디자인 총괄을 찾고 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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