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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문화 감싼 휴머니즘 평가 … 중국영화 왜 '큰상' 거푸 받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가만히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다.

'우연의 일치' 라고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근래에 서구의 유명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중국영화 중에서 동성애를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 왜 이렇게 많은가.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 - 93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대상인 금곰상. 중국의 첸 카이거 감독이 만든 '패왕별희' - 93년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 다시 대만 차이밍리앙 감독의 '애정 만세' - 94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 홍콩 왕자웨이감독의 최신작 '부에노스 아이레스' - 올해 칸영화제 최우수감독상.

요 몇년 사이에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중국영화가 열편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중 네편이 동성애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왜 그 작품들이 서구 영화제에서 큰 평가를 받았을까. 서구인들이 동성연애를 다룬 영화를 선호해선가.

동양에서도 금기가 깨지는 것에 대한 통쾌감 때문일까. 아니면 아시아인이 동성애를 다루니까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이 발동해 더욱 신기하게 보여선가.

우선 서구사회에서 동성애를 보는 시각을 알아보면서 그 해답으로 접근해 보자. 서구 지식인 사이에서 동성애는 마이너리티 문화, 즉 소수의 하위문화로 간주된다.

소수집단들은 지배계층에 의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자기들만의 특수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그들끼리의 집단의식이나 정서를 공유한다.

이런 점에서 동성 연애자들은 소수인종.여성과 함께 마이너리티로 간주된다.

그런 소수집단의 문화를 다뤘다고 다 수작은 아닐 터. 유럽미디어학회 필립 드 루먼드회장의 설명을 옮기자. "서구 지식인들은 소수인종.여성.동성연애자등 마이너리티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을 반 (反) 인간주의로 여긴다.

상을 받은 중국영화들은 이들 소수파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억압적인 사회상을 비판하는 휴머니즘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 영국 미디어학자 짐 쿡의 말.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영화는 따로 있다.

이들 영화는 '런던 레스비언.게이 영화제' 등 동성연애자의 취향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마련된 특수영화제에서 주로 상영된다.

중국영화들은 인간 보편의 가치를 진솔하게 다뤘기 때문에 일반영화제에 초청된 것이다.

" 아시아영화를 서구에 적극적으로 소개한 영국인 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그 이유를 "단지 동성애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고 비인간화되고 있는 사회 상황과 이성애를 포함한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잘 그려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영화에서 동성애는 인간사를 극적으로 다루는 한 방법으로 차용됐을 뿐" 이라고 덧붙였다.

짐 쿡에 따르면 서구에서 동성연애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단순히 '머릿수' 가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비록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인정해주는 자유주의.휴머니즘적인 인식이 사회에 도도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동성애는 사회의 자유도 (度) 와 소수파에 대한 포용력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중국계 감독들이 동성애를 영화에 수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동양에서 동성애란 구체적인 탄압 사례도 별로 없을 정도로 사실상 뒷전에 묻힌 것인데도 말이다.

여기서 리안감독이 이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동성연애자라는 소수파를 영화에 내놓은 이유는 그것이 기존의 보수적인 사회 가치관과 가장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성연애자들을 동양적인 관용의 철학으로 바라보는 것도 괜찮은 영화적 모티프라고 생각한다.

"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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