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머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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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어디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가 좀체 외출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녀, 그러니 놀라는 목소리로 되물을 수밖에. "……명동에 갔었어. " 거짓말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러고 싶지 않아서 나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내 메시지를 듣고 난 뒤에 명동엘 다녀갔단 말예요?" "그래, 그랬어. 그냥 잠깐 다녀온 거라구. " "……왜요?" 낮게 가라앉은 어조에 그녀의 불만 어린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명동에 다녀온 이유? 글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데……특별한 일은 아냐.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하영이도 절로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이런 문제로 감정 상하지 말라구. " "그래두……너무했네요. 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런 날 함께 북한강으로 드라이브나 하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데……내가 또 바보 같은 생각을 했나 보군요. " 중간중간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북한강……좋은 소재였는데 정말 미안하군. 하지만 이제 오월 첫날이니까 아직도 그곳에 갈 수 있는 기회는 많을 거야. " 어째서 오늘, 그녀가 갑작스럽게 북한강을 떠올렸는지를 나는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년 열두 달 중 바다빛과 강빛, 그리고 산색이 가장 좋은 달이 오월이라는 말을 내가 그녀에게 들려준 게 바로 거기, 북한강이 아니었던가.

"저녁엔 뭘 하실 거예요?" 마음을 가다듬은 듯 차분해진 목소리로 그녀는 물었다.

"뭐 특별한 일은 없어. 그냥 평소처럼 지내게 되겠지 뭐. 그리고 내일은 하영이 생일이니까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 나름대로 구상도 해 둬야지. 안 그래?" "무슨 좋은 계획이라도 있나요?" 오월의 녹빛 북한강을 처음 관망하게 되었을 때처럼 그녀는 다소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건 모두 다 비밀이야.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그리고 정오 무렵부터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 줘야 하는데……그럴 수 있겠어?" "그럼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요. 오전에 예약된 손님 두 명만 제가 처리하고 나머지는 미스 한에게 부탁해 두면 돼요. 그럼 내일 전화 주실래요?" "그래, 내일은 내가 전화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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