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음주문화 알콜중독자를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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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이시형 교수 (李時炯.정신과) 는 "술을 미화하고 술좌석에 끼어야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한국 특유의 술문화로 인해 업무 처리등 사회적인 기능은 그럭저럭 하고 있지만 술 없이 생활하기 어려운 잠재성 알콜 중독자는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만큼 많다" 며 "합리적인 술문화 정착이 시급하다" 고 역설한다.

실제로 학계의 조사에 따르면 알콜장애로 인한 국내 평생유병률 (평생 병에 걸릴 확률) 은 약22% (남용12%.중독10%)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노동력의 5%가 중독' 이라는 미국과 비교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서울대의대 정신과 김용식 (金容植) 교수는 "우리나라 알콜 중독자 수가 서양에 비해 적다고 여겨져 온 것은 음주습관에 대한 관대한 태도 때문이지 실제 적은 것이 결코 아니다" 고 말한다.

술중독의 심각성은 히로뽕같은 마약 중독과 다를게 없다.

실제로 이미 지난 87년부터 미국정신의학회는 알콜중독 진단은 히로뽕같은 약물중독과 동일한 진단기준표에 의해 실시하고 있다.

일단 만성 알콜중독자로 진단된 경우 자연치유율은 약 20%.金교수는 "치료를 받는다해도 일정 기간 동안은 알콜중독에서 벗어나지만 결국 다시 술을 마시는 경우가 46~87%에 달한다" 며 " 일단 의존성이 생기면 치료가 어려우므로 조기발견.조기치료가 최선책" 이라고 강조한다.

도대체 '주량 (酒量) =남자의 도량' 으로 여기는 잘못된 술문화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첫번째 요인은 대화가 부족한 억압문화라는 사회구조다.

즉 상명하복 (上命下服) 으로, 인내를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색된 문화 때문에 술 기운을 빌어서만 공식석상에서 서로 하지 못했던 '하고싶은 말들' 을 나누게 된다.

게다가 정해진 기준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상황논리' 가 지배하는 사회다.

따라서 융통성을 발휘하는데 촉매제 구실을 하는 술에 의존하게 된다.

李교수는 "술이 사회생활의 윤활유 구실을 맡고 있는 것도 부분적으로 인정이 된다.

그러나 술문화가 결과적으로 '연회정치' . '연회사업' 을 창출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됐다" 고 설명한다.

또 이같은 술문화는 여성들로 하여금 중요한 정보교환과 사교활동이 이루어지는 '밤의 연회문화' 에의 참가를 어렵게 함으로써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두번째는 과음 조장풍토. 죽을 때 (? ) 까지 마셔야 '우리' 가 된다는 권주문화다.

해마다 학교의 신입생이나 회사의 신입사원들 몇명이 희생당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과음으로 인해 업무를 처리하는데 문제가 생겨도 술꾼인 직장 동료끼리 서로 감싸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외국같으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하거나 입원치료를 받게 해야 할 술주정도 "술 취한 사람 상대해 뭣하랴…" 하며 지나친다.

그러나 바로 이같은 인정 (? ) 문화가 알콜 중독자를 양산해 내는 것이다.

더구나 경제수준의 향상으로 96년 위스키 시장증가율이 세계1위를 차지할 정도로 독주인 양주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술마시는 방법은 벌컥벌컥 들이키던 이른바 막걸리 습성에 머물러 있는 상태. 쉬운 예로 서양인은 보통 1시간에 1잔 정도를 마신다는 칵테일 파티에서조차 한국인들은 주거니 받거니 해 만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李교수는 "잘못된 술문화를 개선하고 알콜 중독자를 줄이기 위해선 술 없이도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토론문화가 정착되야 하는 것은 물론 과음은 자랑이 아니라 다음날 업무수행에 차질을 초래하는 챙피한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며 "이같은 자각은 특히 사회적으로나 조직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고 강조한다.

황세희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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