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방지협약 대상기업 지정 기아그룹.금융계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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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기아그룹의 전 임직원은 부도방지협약 대상기업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사실여부를 확인하는등 어수선한 가운데 착잡한 분위기. 그룹 주요임원들은 회장실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앞으로의 진로를 논의하는등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선홍 (金善弘) 그룹회장등 회장단과 주력사 사장단은 오후 2시부터 11층 회의실에서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부도방지협약 적용과 관련한 후속대책을 협의. 노서호 (盧西鎬) 홍보담당 상무는 오후 3시40분쯤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에게 사장단회의와 관련, "준비가 안됐으니 구술로 하겠다" 고 말한뒤 그룹의 입장을 발표. 盧상무는 "회의분위기가 매우 무겁고 침통했다" 며 "충격에서 벗어나서 그룹의 이미지 문제와 해외사업의 차질없는 진행 등을 중점 논의했다" 고 전했다.

오민부 그룹기획조정실 전무는 "은행측으로부터 사전에 통고가 전혀 없었다" 며 매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획실의 한 직원은 "설마했는데 기어코 일이 터졌다" 면서 "정부의 시책에따라 성실히 사업을 해온 국민의 기업인 기아의 회생을 위해 정부의 특별구제책이 있어야 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기아자동차 협력업체들을 관리하는 소하리공장의 협력업체관리부 사무실에는 오후 3시쯤부터 협력업체들로부터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 고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협력업체 관리부의 한 관계자는 "기아 어음을 할인받을 방법이 있겠느냐고 묻는 하청업체들이 많았다" 며 "하청업체들에게 피해가 적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외근중이던 직원들은 은행권의 발표를 듣고 속속 여의도의 본사로 복귀했으며 그룹 기조실과 홍보실등에는 임직원들로부터의 확인전화가 빗발. 아시아자동차의 한 직원은 "지난 2개월간 자금을 막기위해 매일 새벽 2, 3시에 퇴근했으며 관리직은 6월말 정규 보너스도 받지 못했다" 며 허탈한 표정. …강전 (康田) 기아자동차 자금담당 상무는 "기아자동차가 보관중인 어음이 5백80억원이고 할인받을 수출 대금이 6천4백만달러, 아시아자동차 어음이 1천1백억원 등이 있어서 부도를 막을 여지가 충분했다" 며 "협조융자를 받아서 자금난을 풀려고 했었는데 부도방지협약에 들어가 어이가 없다" 고 말했다.

…노서호 (盧西鎬) 홍보담당 상무는 "김선홍 회장도 이날 오후1시30분쯤 제일은행에 나가있던 임원으로부터 부도방지협약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고 전했다.

자금부의 한 직원은 "14일 밤까지도 제일은행 측과 어음할인과 대출한도 확대 방법 에 대해 논의했다" 며 "임원들도 15일 오후2시쯤 팩스 등으로 통보를 받을 때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고 말했다.

…기아그룹은 이달말까지 기아자동차등 주력 4개계열사 이외의 다른 계열사에 대한 자구계획을 마련하는등 분주한 움직임. 홍보담당 노서호 (盧西鎬) 상무는 이날 "지금까지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기산등 4개 주력 계열사를 위주로 자구계획이 마련됐지만 앞으로 나머지 계열사에 대해서도 불용부동산 매각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구계획을 마련할 방침" 이라고 강조. 그는 "오는 30일 채권단이 2차 대표자회의를 개최하기 전에 구체적인 자구계획이 마련될 것" 이라며 "기아자동차 등 주력 4개 계열사의 자구계획은 이미 마련된 것을 토대로 실천해 나갈 방침" 이라고 말했다.

…한보철강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기아그룹이라는 대형 부실을 안게 될 가능성이 커진 제일은행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다.

특히 기아에 부도방지협약이 적용 된 15일에는 한일그룹의 우성인수가 백지화 돼 분위기가 더욱 침울한 상태. 한 시중은행장은 "기아그룹이 부도유예 협약 적용대상이 되더라도 정상화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제일은행은 또다시 부실채권을 떠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고 밝혓다.

또 기아특수강의 은행권 여신 5천5백억원중 4천3백억원을 떠안고 있는 산업은행은 기아특수강의 처리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당기순이익 (작년말 현재 8백95억원 적자)에 비해 부채규모 (1조3천억원)가 너무커 정상화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려운 상태" 라고 밝혔다.

…종합금융사들은 15일 기아그룹이 부도방지협약 적용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뒤통수를 맞은 기분" 이라는 등이번 결정이 뜻밖이라는 반응이 지배적. 기아그룹에 대해 업체별로 수천억원씩의 여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종금업계는 기아에 대한 어음결제가 당분간 중지됨에 따라 일단 자금난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발표 내용과 향후 대책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 대한종금 관계자는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기아그룹은 부도방지협약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금융계에서는 지배적이었다" 며 "앞으로 삼성, 현대, LG 등 3대 그룹 이외의 그룹에 대해서는 여신이 더욱 신중해질 수 밖에없을 것" 이라고 강조. 우선 시중의 자금사정이 안정적인데다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 (RP) 의 매각또는 매입 등으로 신속하게 시중의 유동성을 조절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기아 사태가 자금시장에 일시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큰 요동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

<이영렬.유권하.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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