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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이끈 인류의 진화, 이젠 과학기술이 바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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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20면

사랑니를 뽑느라 고생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왜 많은 치아 중에서 유독 사랑니가 문제일까? 수만 년 전 살았던 우리 조상의 주식은 익히지 않은 거칠고 딱딱한 음식이었다. 그런 음식들을 씹고 소화시키려면 튼튼한 턱뼈가 필요했다. 하지만 불을 사용해 음식을 익혀 먹고 농경 문화 덕택에 부드러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힘 있게 씹는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다윈의 족보

그러자 사람의 턱뼈는 점차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입 속 공간도 작아져 사랑니가 자랄 공간이 부족해지게 된 것이다. 600만 년 전 인간과 침팬지가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후 인간의 진화는 계속돼 왔다. 특히 문명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1만 년 전부터는 이전보다 100배 정도 빠른 속도로 인류의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근 200여 년간 인간의 문명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는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은 앞으로 인류 모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외부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신체, 혹은 사회 구조를 가진 생물들이 살아남아 더 많은 후손을 남기게 된다는 게 요지다. 그런데 자연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외부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자연선택의 개념은 도전받고 있다. ‘자연’만이 가장 적합한 개체를 선택하는 진화를 넘어 인간 스스로 진화의 방향을 결정할 힘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강한 자외선이 내리쬐는 적도 부근에서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하얀 사람은 자외선 차단 능력이 떨어져 피부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거꾸로 극 지방 쪽 사람들은 햇빛을 충분히 흡수해야만 비타민 합성과 면역력을 강화시킬 수 있어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외선 차단제와 영양제가 보급돼 사람은 피부색과 상관없이 원하는 곳에서 건강하게 살고 후손을 남길 수 있다. 인구 이동이 많아지면서 전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주 환경에 관계없이 신체적으로 비슷해지고 있다.

기계에 대한 인간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기계와 인간이 합쳐진 사이보그 형태로 인간이 진화할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신체적 결함도 기계의 힘을 빌려 얼마든지 극복하고, 머지않아 뇌 속의 생각마저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런 쪽으로 인간이 진화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진화는 특정 형질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후손을 더 많이 남겨야만 진행되는 것인데, ‘내 마음을 컴퓨터 속에 저장한 사람’이 ‘내 마음을 내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보다 더 많은 후손을 남길 수 있을 만큼 유리한 형질을 가질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라는 책에서 본격적으로 인류의 진화를 다뤘다. 다윈은 결코 원숭이가 사람이 됐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사람도 다른 생물들처럼 이전에 살았던 조상 격인 생물로부터 진화했을 텐데, 사람과 공동 조상을 가졌을 확률이 가장 높은 생물은 사람과 비슷한 원숭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의 화석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고 가장 오래된 화석은 약 35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우리처럼 두 발로 걸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인간의 조상은 약 180만 년 전부터 두뇌 용량이 커지면서 석기와 같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고 신체 구조도 현생 인류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이런 특징을 가진 인류의 화석에 대해선 ‘호모’라는 이름을 붙인다.

우리와 두뇌 용량, 신체 구조가 거의 비슷한 호모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이들 중 일부는 아프리카를 떠나 여러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유럽으로 진출한 호모사피엔스가 그곳에 살고 있던 다른 종인 네안데르탈인과 마주쳤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보다 발달된 도구와 언어를 가지고 있던 호모사피엔스가 그렇지 못한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을 것이라는 주장과, 그보다는 서로 교류하면서 서서히 섞여 현생 인류로 변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인류의 진화가 시작된 후 문화라고 불릴 만한 것은 약 5만 년 전부터 출현했다. 동굴 벽화를 비롯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석기·골각기·조각품들이 세계 각지의 유적에서 쏟아져 나온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촉발시켰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사람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중요한 특징들이다.

대략 1만 년 전부터는 농경 문화와 동물의 가축화가 시작되고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살게 되었다. 결핵·독감과 같은 전염병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소수의 사람끼리 살다가 한꺼번에 많은 사람과 가축까지 집단 생활을 하면서 전염성이 강한 병균들이 번창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농경의 시작과 함께 기존의 다양했던 식단이 쌀·밀가루와 같은 몇 가지 곡물로 제한되면서 충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도시와 국가가 형성돼 ‘내 편’ ‘네 편’이 갈리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전쟁의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 이런 부정적 측면들이 있긴 하지만 인류는 큰 무리로 모여 살면서 뛰어난 지적 능력을 발휘해 문명을 형성할 수 있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를 이렇게 끝맺는다. “우리는 인간의 훌륭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은 뛰어난 지성과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귀한 인간이지만 신체 구조의 기원이 하등동물에게 있다는 것만큼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진주현씨는
서울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생물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 제인 구달과 루이스 리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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