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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해진 거리 … 상인들 마음 놓고 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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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것 좀 보고 가요.”

지난달 28일 오후 5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서 애완견용 옷을 파는 노점상 이영덕(60)씨가 연방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러댔다. 26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해오며 하루도 쉬지 않은 그를 두고 주변 상인들은 ‘악바리’라고 부른다.

이씨는 요즘 주위 사람들로부터 “얼굴 좋아졌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서울시의 ‘노점상 양성화 정책’에 따라 지난해 3월 구청에 실명 등록을 하고, 정해진 규격과 디자인에 따라 노점을 만들어 합법적인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매출이 크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단속 걱정이 사라져 속이 편하다”며 “예전에 리어카를 끌고 다닐 땐 매일 단속반과 숨바꼭질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노점에서 분홍색 털옷을 집어든 이영은(26·여)씨는 “노점이 거리를 다 차지해도 불평을 못 했었는데 요즘은 깨끗해진 노점 덕분에 쇼핑할 기분이 난다”고 말했다.

◆새 단장한 노점상=서울시내에는 현재 1만여 개의 노점상이 있다. 이 중 지난해 1월 말 서울시가 노점상을 양성화한 이후 1273개 노점상이 영업권을 인정받는 실명 등록을 했다. 노점이 많이 모여 있던 곳을 ‘노점 특화 거리’로 정비해 일종의 ‘상업지구’ ‘관광지구’로 조성한 것이다.

노점상이 양성화된 이태원로의 인도(上)는 깔끔하다. 정비되기 전의(2007년 7월) 너저분한 모습(下)과 대조적이다. [조문규 기자]


각 구청은 구의 특색과 거리 여건을 고려해 디자인한 노점을 제시하고 있다. 거리 폭이 좁고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의 경우, 노점의 크기가 가장 작고(너비 200cmX높이 170cmX폭 150cm), 노점 외관을 김홍도의 풍속화로 꾸몄다. 많게는 1000만원까지 드는 비용을 노점상들이 직접 부담했다. 매년 도로점용료(종로 기준 연간 90만~100만원)도 낸다. 대신 구청은 단속을 하지 않는다. 전기도 대준다.

노점 특화 거리는 서울 시내에 42곳이 있다. 단속반원과 숨바꼭질에 지쳤던 노점상들은 반기는 모습이다. 종로5가에서 꽃노점상을 하는 김성희(42·여)씨는 30년 내내 단속에 쫓기던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김씨는 “요즘은 마음놓고 장사한다”며 “이곳엔 꽃노점상들이 많아서 봄이 되면 ‘꽃길’이 되는데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고 말했다.


주변 상인들도 깨끗해진 거리에 만족한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정순영(51·여)씨는 “노점들이 물건을 잔뜩 쌓아놓는 탓에 식당 간판과 입구가 종종 막혀 속이 터졌다”며 “이젠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회사원 이주환(32·창천동)씨는 “깔끔해져서 보기 좋고 품질에도 믿음이 간다”고 평가했다.

◆명확한 정비 기준 필요=일부 노점상은 실명제 참여 이후 매출이 떨어졌다고 울상을 짓기도 한다. 동대문의 경우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되고, 일대가 대대적으로 정비되면서 많은 노점이 목 좋은 자리에서 밀려났다. 동대문운동장역 주변에서 스타킹을 파는 노점상 장모(48·여)씨는 “원래 자리에서 100여m 정도 옮겼더니 매출이 50% 정도 떨어져 하루 10만원도 손에 쥐기 힘들다”고 불평했다.

작은 노점 규격과 영업시간 제한도 불만거리다. 노점상 이영덕씨는 “노점이 조금만 컸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키가 큰 손님에게 1m70cm 높이의 노점은 불편하다는 게 이유다. 이태원의 경우 오후 3~9시로 정해진 영업시간을 늘려달라는 노점상들의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주변 상인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비 기준이다.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생계형은 실명 등록해 영업권을 보장해 주는 대신 테이블을 놓거나 종업원을 두는 기업형은 철거한다는 방침이다. 이 기준에 따라 앞으로 4000여 개의 노점을 정비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점상은 ‘생계형’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보따리상 등 5000여 개의 좌판에 대해선 속수무책이 다.

서울시 김병환 가로환경개선담당관은 “일본·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노점상 허가제’를 운영하고 있다”며 “생계형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소득 수준을 알 수 있는 실명제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국노점상연합회는 “노점을 운영할 수 있는 소득 기준을 서울시가 맘대로 정하면 곤란하다”며 반발한다.  

임주리 기자 ,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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