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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와 솔로몬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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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제가 급기야 마이너스 성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내년에 우리 경제가 가장 먼저 회복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그저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는 대통령의 의도적인 낙관론쯤으로 담아두면 좋은 말이다. 당장 올해 경제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판에 대통령인들 내년 일을 어찌 안단 말인가. 그보다는 경제성장률이 앞으로 한동안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안전할 것 같다.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대책을 세워도 제대로 세울 것 아닌가.

마이너스 성장이란 경제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소비와 투자가 줄고 그 결과 생산이 줄어드는 것이다. 생산이 줄면 소득과 고용이 줄어든다. 국민 각자의 호주머니가 얄팍해지는 것은 물론 일자리마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망하는 기업이 늘고 실업자가 늘어난다. 이게 심해지면 공황이다.

 이번 경제위기는 외환위기 때와 달리 경제의 축소 현상이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경기가 가라앉는 속도가 느리다 해서 고통이 덜하거나 증세의 심각성이 작은 게 아니다. 오히려 완만한 경기하강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고 방치했다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병세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미약하다고 하지만 한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은 이미 시작됐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당장 죽을 지경은 아니지만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대로 놔뒀다간 조만간 무슨 사달이 벌어지고야 말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위급해졌다. 그동안 말로만 떠들었던 위기의 실상이 이제 그 흉칙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 중환자를 앞에 두고 여전히 정쟁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딱하기까지 하다. 환자를 살릴 생각은 않고 서로 내 환자라고 우기는 꼴이다. 환자의 고통이나 병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환자가 죽거나 말거나 내 몫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심보다. 흡사 성서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인 솔로몬의 재판을 보는 듯하다.

솔로몬 왕은 서로 자기 아기라고 다투는 두 여인에게 칼로 아기를 반으로 갈라 나누어 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아이의 진짜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차라리 상대편 여인에게 주어도 좋으니 아이를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했다. 왕은 칼을 멈추게 하고는 아기를 울고 있는 여인의 품에 안겨줬다. 모름지기 진짜 엄마라면 아기의 목숨을 먼저 생각할 것임을 예상한 명판결이다.

이제 국민은 솔로몬의 지혜를 빌려서라도 누가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구할 것인지 가려내야 한다. 야당은 벌써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거리로 나섰다. 모름지기 진짜 정당, 진짜 정치인이라면 당리당략이나 알량한 이념보다는 국민의 생존이 걸린 경제를 먼저 살려낼 것이다. 문제는 현대판 솔로몬의 재판에 등장한 우리의 정치인들에게 진정한 구국의 양심을 기대했다간 자칫 경제를 결딴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두 여인이 모두 아기를 칼로 베어서라도 둘로 나눠가지겠다면 어쩔 것인가 말이다. 솔로몬 왕이라면 두 여인이 모두 친모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내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를 외면했다고 정치인을 당장 모두 나라 밖으로 내쫓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누가 경제를 망쳤는지 눈여겨보았다가 다음 선거에서 내쫓으면 된다. 그러자면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정치권의 행태를 가려봐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입법안들이 정말 경제 살리기에 긴요한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거꾸로 야당의 주장처럼 이른바 ‘MB악법’을 모조리 저지하고 거리에서 반정부 촛불을 들면 경제가 과연 살아날 것인지도 챙겨봐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인들을 다음 번 선거에서 심판한다 해도 그때는 이미 경제 살리기가 물 건너간 뒤라는 점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