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좌파 감독 켄 로치 作 '레이디버드' 복지국가의 허상 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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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영화를 통해 역사와 사회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공박하는 영국의 좌파감독 켄 로치(61)의 영화'레이디버드,레이디버드'가 비디오로 나왔다.(성베네딕도 시청각 279-7429).'레이디버드…'는 모자간의

혈육관계를 끊어버리는 사회제도의 폭압성을 실감나게 고발한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작품은 각각 다른 4명의 남자에게서 낳은 4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는 미혼모(크리시 로크)가 주인공이다.영국 밑바닥 계층의 젊은 이 여인은 힘겨운 생활을 꾸려나가다 자기파괴적인 심성을 갖게 된다.

결국 지역사회 보건당국은 사법적인 절차를 거쳐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 살지 못하게 만든다.

친척이나 이웃과도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는 따뜻한 존재는 파라과이에서 온 정치망명객(블라디미르 베가 분)이다.그와 지내면서 낳게 되는 2명의 아이도 당국은 강제로 그녀와 떼어 놓는다.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만나 볼 수조차 없는 처지에 놓인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은 마지막 아기를 낳는 장면이다.아이를 낳으면서 주인공이 내뱉는 말은“이 아이가 나오면 안되는데….” 자신의 혈육과도 함께 살지 못하는 불행한 여인을 통해 복지국가의 모순과 허상을 고발하는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이 공분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문제점의 원인이 몇몇의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제도와 계급 이기주의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복지국가의 한 모순이 순박한 개인을 극도로 파괴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모순과 폭력적인 정치체제를 공격하는 켄 로치의 작품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전편에 걸쳐 실제 상황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식 연출때문이다.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는 주인공 크리시 로크는 이 영화로 93년 베를린영화제와 시카고영화제에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켄 로치의 작품은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영국청년을 중심으로 20세기 파시즘의 실체를 고발한'랜드 앤 프리덤'(드림박스)이 지난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고 이번에 나온 '레이디버드…'가 두번째다.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힘겹게 살아가는 미혼모 역을 실감나게 보여준 주연 여배우 크리시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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