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지방살아야 국가도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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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의류업체인'베네똥'이 전세계 수많은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아마도 각국의 청소년들이 가장 입고 싶어하는 스타일.색상등에 관한 욕구를 민감하게 파악해 신속하게 제품을 공급하기 때문일 것이다.베네똥이 이렇게 발빠르게 현지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이탈리아의 본사에서는 총괄적인 관리를 할 뿐이고 제품의 생산에서부터 유통.판매에 이르는 전과정을 현지 지사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오늘날 초국적 기업은 이처럼 본사는 런던.뉴욕.도쿄 같은 세계적인 도시에 있지만 공장과 판매망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어 각 지역에 알맞은 생산및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세계 곳곳에 분산되어 있는 초국적 기업의 판매망과 공장들은 현지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지역의 경제환경에 동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인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기업들이 세계 전역으로 뻗어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세계화 시대에 지방의 중요성이 그 어느때보다 커진 것이다.또한 국가의 시장규제 권한이 줄어드는 대신 세계무역기구(WTO).유럽공동체(EC).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등과 같은 국제기구와 지방정부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것이 세계화시대의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이다.이제 지방은 국가의 권한이 축소됨으로써 세계경제와 국민들 사이에 생긴 공백에서 새삼 주목받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세계화시대에 지방은 다음 3가지 면에서 커다란 가치를 갖는다.

첫째,세계적인 기업들의 입지대상으로서의 가치이다.한국처럼 권력이 중앙에 극도로 집권되어 있는 몇몇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각 지방이 중앙정부 또는 연방정부의 중재나 간섭 없이 직접 세계를 상대로 기업유치.장소판촉 경쟁에 나설 수 있는,그리고 나서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둘째,지방화 주역으로서의 가치이다.현재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기술및 경영방식은 생산과정과 마케팅전략이 매우 유연하다는 것이 특징이다.동시에 어디서 생산하느냐,어디서 판매하느냐에 따라 차별화되는만큼 예전처럼 중앙정부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조절하는 체제보다는 보다 기민하고 미시적인 조절체제를 요구한다.따라서 지역에 밀착되어 있어 기업들이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문제를 신속히,적절하게 지원하고 조절할 수 있는 지방행정체제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셋째,인간을 존중하는 살기좋은 지역건설의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가치이다.시장경제는 놀랄 정도로 능률적이기는 하지만 분배의 측면에서는 불공평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또한 환경오염 같은 문제도 시장기능에 의해 자동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세계화와 더불어 국가의 권한은 갈수록 줄어든 것이 분명하므로 각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고 환경을 가꾸는등의 일은 점차 지역 공동체 조직의 몫이 될 것이다.세계화는 홀로가 아니라 지방화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에 대한 인식의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세계화시대의 지방은 더 이상 국가의 수동적인 하부단위가 아니다.각 지방이 살아 움직이며 세계를 향해 도약할 때 국가의 경쟁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방이 새 가치를 인정받고 제 권한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즉 지방에 대한 중앙권력의 분권화와 지방의 자율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유종근 전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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