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정부와 대학 신뢰도 높여야 과격학생운동 치유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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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93년에 출범한 한총련 중심의 학생운동은 그 과격성으로 인해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이런 과격시위를 지켜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지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과격시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을 잡아들여 격리시키는 것은 근원적인 치유법이 될 수 없다.이런 집단이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토양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우리 민족의 진로를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시위방법을 지도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차원의 학생운동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선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깨끗해야 한다.정치권이 당리당략에 치우치고 부정부패로 얼룩질 때 공권력의 권위는 떨어지고 과격한 학생운동에 빌미를 주게 된다.또 대학의 학사운영에서도 학생들이 의혹을 갖지 않도록 반(反)교육적인 비리가 없어야 한다.학교가 학생 앞에 정정당당할 수 있을 때 시대착오적인 세력에 대해 과감히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우리나라 대부분 대학들은 후생복지 시설이 낙후돼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체육.문화공간등이 턱없이 부족하다.학생시위를 살펴보면 다같이 율동하고 노래부르고 연극하고 함성 지르고 하는 것들이 마치 축적된 에너지를 한껏 배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이 보인다.

평소에 땀을 흘릴 수 있는 체육시설이 있고 이 세상을 실컷 풍자할 수 있는 연극무대가 있고 크게 합창할 수 있는 음악실이 있다면 사회에 대한 불만도 감소하지 않을까 싶다.

비교적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하는 서울대만 하더라도 아직 수영장등을 갖춘 종합체육관이 없으며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문예관이 없고 학생회관은 노후해 그 상태가 형편없다.서울대는 조만간 이들 시설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대개의 대학들이 어려운 처지일 것이다.한편 건전한 취미를 살리도록 동아리 활동을 장려해야 한다.등산.테니스.서예.바둑.고전음악등의 동아리 활동에 학교가 관심을 갖고 육성해 준다면 학생들의 정열이 엉뚱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을 것이다. 세번째로 대학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사회의 변혁은 폭력으로는 불가능하며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봉사할 때 가능하다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지난 20여년간의 과격 학생운동은 스승과 제자가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앗아 갔고,따라서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어른을 섬길 줄 아는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봉사활동을 장려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학생운동도 보다 유연해질 것으로 보인다.

박성현 서울대 학생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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