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세계가 지갑 닫는데 수출만으론 역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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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시장이 이 정도로 얼어붙을 줄은 정부도, 민간연구기관도 몰랐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줄어든 폭이 예상보다 커지자 모두 긴장하는 표정이다. 지식경제부 정재훈 무역정책관은 2일 1월 수출입 실적을 발표하면서 “지난 석 달간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수출이 전년 동월에 비해 19.5% 줄었는데 이때가 그나마 호시절이었고, 앞으로 수출은 더 나빠진다는 얘기다.

우리의 수출 시장인 세계 각국의 실물 부문 침체는 이제 막 시작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에 비상등이 켜지면 한국 경제는 중병을 앓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은 약 40%를 차지한다. 수출이 계속 줄면 경기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미 산업 현장에선 수출 감소로 재고가 쌓이고 공장 가동률이 뚝 떨어지면서 ‘소득 감소→소비 감소→내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노무라인터내셔널 증권은 이날 “올해 한국 수출이 지난해보다 10.3%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 “줄어드는 수출은 산업 생산에 영향을 줘 한국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내수 부양책을 쓰라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지갑을 닫아 수출이 막히는 것이야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지만 재정과 금융정책으로 국내 소비 여력을 키울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16조원의 재정 지출 확대와 35조원의 감세안으로는 비상 국면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호주 등 해외에선 저소득층이 소비에 나설 수 있도록 현금이나 쿠폰을 직접 나눠줄 정도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부유층이 소비를 늘리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과 맞먹는 효과가 난다”면서 “소비 여력이 있는 이들이 지갑을 열도록 각종 세금 부담을 더 줄이고 내구재에 붙는 소비세도 대폭 감면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역수지 적자도 걱정이다. 지난해 10월(10억 달러)과 12월(5억4000만 달러) 소폭이나마 흑자를 냈던 무역수지가 다시 큰 폭의 적자로 돌아선 것은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때 경험한 것처럼 대개 경기 침체기엔 수입이 줄어 무역수지는 축소지향형 흑자를 내기 마련인데 이번엔 수출 감소폭이 수입 위축분을 능가했다. 무역수지만 놓고 보면 현재의 상황이 외환위기 때보다 좋지 않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당장 경상수지에 탈이 날 수밖에 없고 이는 외환시장 불안으로 직결된다. 지난해 정부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지켜낸 경상수지가 송두리째 위험해질 수 있다. 이제 겨우 신발끈을 매고 있는 2기 경제팀 앞에 난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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