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프라이드] ‘야구장에도 물 채워라’ 말 나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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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임을 자부하는 프로야구가 축구계에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전국에 마련된 세계적 수준의 월드컵 경기장이다. 야구인들은 “월드컵 경기장을 야구장으로 개조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아쉬워한다. 최근 야구인들에게 부러운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축구인들이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자유투표로 선출한 것이다.

축구와는 대조적으로 프로야구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자리가 두 달 가까이 비어 있다. 지난해 12월 16일 신상우 총재의 사퇴 직후 8개 구단 사장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후임으로 유영구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을 추대키로 했다. 그때까지 유 이사장은 총재직 수락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쳤으나 12월 22일 돌연 고사했다. 당시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총재의 승인권을 갖고 있는 문화부 관계자들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 이사장 사퇴 이후 각 구단은 후임 총재에 대한 얘기를 삼가고 있다. 정부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대부분 구단주가 기업인인 마당에 정부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히 나섰다가 찍히면 어떡하느냐”고 하소연하는 구단 사장도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정부가 총재 선출에 개입해서도 안 되고, 구단들이 겁을 먹고 지레짐작으로 ‘낙하산’을 기다리는 것도 우습다. 정부가 구단들의 적자를 메워줄 리 만무하고, 그럴 이유도 없다. 각자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간 10명의 역대 KBO 총재 중 박용오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인 출신이었다. 그중엔 단 25일간 재임한 사람도 있었고, 3년 임기 중 2년도 못 채우고 떠난 정치인 총재가 6명이나 된다. 이들에게 총재직은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인 셈이다. 이들에게 산적한 KBO 업무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잘했든 못했든 야구인들은 역대 10명의 총재 중 박용오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만큼 야구인 출신 총재가 야구를 잘 알고, 야구 행정을 잘 펼쳤다는 뜻이다.

정부도 말로만이 아닌 실제로 야구계의 자율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체육단체장은 체육인끼리 알아서 하는 게 좋다”고 말했지만 곧이 곧대로 믿는 야구인은 많지 않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즌 개막이 코앞인데 후임자 얘기가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야구인들도 자기 밥그릇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관치에 길들여진 과거의 타성을 되풀이한다면 야구의 미래는 없다.

시간은 많지 않다. 총재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프로야구는 타이틀 스폰서도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온 국민의 관심사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500만 관중 돌파로 한껏 달아오른 야구 열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야구인들은 축구협회장 선출 모습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신화섭 기자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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