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따라 한국 온 영국인 … 새·습지 지킴이로 11년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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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생명의 터’ 나일 무어스 대표가 지난달 30일 부산 사무실에서 습지 보전 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990년 영국의 한 청년이 넓적부리도요란 새를 만나려고 고향인 리버풀을 떠났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새와 생명의 터’ 대표인 나일 무어스(46)다. 그는 이곳에서 한국의 철새와 습지 보호 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무어스는 90년 일본 후쿠오카를 찾았다. 매년 그곳에 오리너구리처럼 두툼한 부리를 가진 넓적부리도요가 찾아온다는 것을 책에서 봤기 때문이다. “고교 교사를 하는 동안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특이한 모양의 넓적부리도요가 눈에 띄어 그 새를 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그는 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생태학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철새를 조사하기 위해 매년 한국의 낙동강·새만금·영종도 등지를 찾았다. 국내 환경단체와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러다 98년 봄 그는 아예 근거지를 한국으로 옮겼다. 한국의 새와 습지를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제8회 세계 습지의 날(2일)을 앞둔 지난달 30일 남천동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무어스는 “넓적부리도요는 한국·일본·동남아 등 세계에서 500마리뿐인 희귀한 새”라며 “참새만큼 작은 새가 그처럼 두툼한 부리를 가진 게 너무 신기했다”고 말했다.

98년 여름 그는 시화호 갯벌에서 검은머리갈매기 둥지를 발견했다. 중국에서만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새였다. 그가 둥지를 발견하면서 이런 사실을 뒤집은 것이다. 무어스는 “매립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번식지를 지키겠다는 생각에 한국의 전문가에게 알렸는데, 그 뒤 둥지가 훼손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소통의 부족’을 느끼면서도 꾸준히 현장 조사를 벌여온 그는 2004년 10월 국내외 지인들과 뜻을 모아 ‘새와 생명의 터’를 만들었다. 600여 명의 회원 중에는 캐나다·호주 등 35개국의 해외 회원도 400여 명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남에서 열린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98~2008년 사이 간척사업으로 새만금의 도요·물떼새가 20%나 줄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람사르협약은 물새 서식지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이다. 무어스는 지난해 말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환경재단이 선정한 ‘2008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뽑혔다.

그는 “람사르 총회가 끝나자마자 한국의 정부나 환경단체의 관심이 적어진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갯벌 보호가 대중적 지지를 얻으려면 장기적 데이터,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쌓여야 한다”며 “ ‘보전’은 손실·중단·방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후대를 위한 최상의 관리와 현명한 이용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어스는 “99년 새만금의 옥구염전 위로 75마리의 넓적부리도요가 한 줄로 날아오르던 환상적인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며 “날아오르는 도요새·물떼새가 생동하는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강찬수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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