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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가 대세인데 매너 좋은 역만 몰리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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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있어보이는’ 배역이 유독 몰리는 배우가 있다. 기태영(31·사진)씨도 그렇다. 지난해 ‘국민드라마’로 불렸던 ‘엄마가 뿔났다’의 부잣집 아들 정현(‘장미희 아들’로 더 유명했다)이 시작이었다. 최근 SBS에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밤 시간대 드라마에서 그의 럭셔리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와인 소재 드라마 ‘떼루아’에서는 여자를 위해 뭐든지 할 준비가 돼 있는 부드러운 매너의 건설회사 이사 조이박으로, ‘스타의 연인’에서는 한류스타 마리(최지우)의 전 남자친구인 재벌 3세 하영으로 출연 중이다. ‘떼루아’ 편성이 늦어지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생긴, 보기 드문 ‘한 방송사 드라마 주 4일 연속 출연’이다.

◆무공해 드라마의 ‘안 나쁜 남자’=아쉽게도 두 작품 다 완성도는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은 생각보다 오르지 않는다.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처럼 ‘화학조미료’를 뿌려대지 않아서라는 게 방송가의 분석이다. ‘떼루아’의 조이박은 기태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현실적이리만치 좋은 남자”다. 태민(김주혁)을 사랑해 애태우는 우주(한혜진)에게 “우리 너무 숨기는 게 없는 건 아니에요?”라며 담담히 받아준다(드디어 1월 19일 13회분에서 고백을 했다. 물론, 거절당했다). “요즘 먹히는 캐릭터는 아니죠. ‘나쁜 남자’가 대세인데….”

“‘하얀 거탑’이 끝나고 1년 정도를 쉬었어요. 부드럽고 매너 있고 부유한 남자 역만 너무 몰려서요. 실제로 만나면 그렇지 않은데 다들 저한테서 곱게 자랐을 거라는 인상을 받나봐요.”

◆‘중고 신인’으로 끝없는 몸만들기=10년, 이나 됐다. 1997년 KBS ‘어른들은 몰라요’, 99년 ‘학교2’ ‘카이스트’에 출연했으니 꽤 일찍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하지만 군 입대 등으로 공백을 5년 가까이 보내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중고 신인’이 됐다. 매니지먼트사 소속이 된 것도 ‘하얀 거탑’을 하기 직전. 그때까지는 그저 근육 만드는 운동에 전념했다.

“연줄도 없고, 수완도 없다보니 준비하는 것 외엔 할 게 없었어요. 기회는 기름이 발라진 밧줄 같아서 목장갑이라도 끼고 있지 않으면 막상 왔을 때 놓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한검도회 단증도 따고 수영도 열심히 했죠. 라면만 먹고 살아도 좋으니 평생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요.” (하지만 ‘하얀 거탑’ 오디션에서 안판석 감독은 그의 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라면만 먹어도’라는 표현에 그가 ‘눈물 젖은 라면 맛’을 아는지가 궁금해졌다. 기태영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강남 8학군’ 출신. 하지만 “지금도 고추와 양파를 즐겨 먹지 않는다”는 의외의 대답을 돌려줬다. 아버지 사업이 급작스레 기운 고등학생 시절 반찬이 없어 거의 매 끼니 고추와 양파만 먹은 탓이다. 편의점·패스트푸드점 등 아르바이트도 종류별로 골고루 해봤다. “내가 그때 한 눈 팔 수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부모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아서”라는 말에서 ‘평생’이라는 각오에 실린 무게가 느껴졌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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