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스마트 파워’로 결속된 미·일 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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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국민의 흑인 대통령 선택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역사교체’라고 평가할 만큼 세계를 놀라게 했다. 취임 후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라이벌과 우군을 함께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대외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전 부시 정권 때와 달리 ‘책임지는 주권’ ‘스마트 파워’를 토대로 ‘국제 협조주의’를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일본과 같은 동맹국에 대해 보다 확대된 ‘부담 분담(burden sharing)’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 정부는 전통적으로 미국발(發) 외교쇼크를 두려워했다. 특히 갑작스럽게 진전되는 미·중 관계의 개선을 가장 두려워한다.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방중 발표인 1972년의 ‘닉슨 쇼크’와 98년의 ‘클린턴 쇼크’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오바마 정권도 그러한 쇼크를 터뜨릴지 모른다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당선 이후 현재까지 오바마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라인 인선과 정책성향을 종합해 보면 ‘오바마 쇼크’의 가능성은 약해 보인다.

 우선 미국 동아시아 외교정책 톱라인에 실세 지일파가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주일대사에 조셉 나이 전 국방차관보이자 하버드대 교수를 선정했으며, 국무성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에 지일파 정책전문가 커트 캠벨을 임용했다. 나이는 90년대 ‘나이 리포트’, 2000년대엔 ‘아미티지 리포트’를 작성해 미·일 동맹의 재정의와 강화를 유도한 장본인이다. 또한 군사력 등 하드파워와, 문화·가치 등 소프트 파워를 동시에 활용해야 한다는 ‘스마트 파워’론의 제창자다. 미·일 관계가 ‘스마트 파워’로 결속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을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일 동맹을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의 초석’으로 위치설정을 했다. 미국이 직면한 난제는 경제위기의 극복을 시발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종식,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 지구온난화 대처 등인데, 동맹국인 경제대국 일본의 협력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어 양국 간에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낼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정부는 일본에 정부개발원조(ODA)나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좀 더 강화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일본의 기여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요구에 일본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면 미·일 관계의 퇴보를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자민당 정권이다. 단명에 그친 아베·후쿠다 정권에 이어 현 아소 내각도 사분오열 직전이다. 올해 치러질 중의원선거에서 야당인 오자와 민주당에 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일본 외교에서 미·일 동맹 기조는 불변일 것이다. 오바마의 동아시아 ‘스마트 파워’ 외교는 오자와 민주당 정권까지 예상한 ‘오·오 동맹’을 시야에 넣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일본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똑같은 급으로 명확히 ‘동맹’이라고 규정한 반면 한국은 ‘파트너십’ 정도로 보는 면이 없지 않다. 일본과 중국을 중시하는 오바마 정권하에선 한·미 동맹의 비중이 격하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미국과의 ‘21세기 전략동맹’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는 실질적인 안보·가치동맹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미국과의 공조에 허점이 없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지원 문제를 선제적으로 미국에 제의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라고 본다.

손기섭 부산외대 교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