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운용과 자리바꿈 - 이대흠의 '봄은' 표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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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올해 제3회 현대시동인상 수상자로 결정된 이대흠씨의 시 5편중 1편인'봄은'을 두고 오세영시인이 자신의 시'서울은 불바다2'를 표절한 혐의가 짙다고 문제를 제기한바 있다(본지 6월17일 42면 보도).이에대해 이 상의 심사위원중 한사람인 중진시인 정진규씨가 반론을 보내왔다. 편집자

이대흠씨의'봄은'을 표절작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견해며 이 상을 심사했던 우리 현대시동인들의 종합된 결론이기도 하다.물론 발상의 일치,또는 그 표현에 있어 명사적 일치를 발견할 수는 있다.이는 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봄날의 생명적 역동성을 두고 이러한 경우 흔히 비유되는'전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대목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는 이 시인의 경우에 있어서나,오시인의 경우에 있어서나 결코 독창적인 전유물의 그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보편적인 발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우리의 일상회화에서도 이러한 비유는 흔히 쓰이고 있으며 기존의 많은 작품들 속에서도 이러한 유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전쟁'의 의미나 이미지를 시로 수용하는 시각에 있어 확실한 변별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오시인은 당시 위기감을 조성한 한 북한당국자의“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표제로 원용,그러한 사회적 현상과 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자연의 현상을 전쟁으로 연계한 아주 좋은 상징공간을 빚어내고는 있으나 그의 시의 궁극은'자연의 전쟁'이라는 생명현상 자체로 끝나고 있다.오시인의 꽃들이 쏘아올리는 총구의 방향은'하늘을 향해'있으며 이시인의 그것은'세상을 향해'있는 것부터 다르다.

“숨쉬지 말라 그대 언 영혼을 향해 언제 방아쇠가 당겨질지 알 수 없다 마침내 곳곳에서 탕,탕,탕 세상을 향해 쏘아대는 저 꽃들”에서 보이는'그대 언 영혼''세상을 향해'등의 시구를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시인의 시는 자연의 생명적 역동성으로 얼어있는 영혼을,그러한 세상을 해빙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의지를 여기에서 강직하게 내보이고 있다.이것이 그동안 천착해온 이시인의 시세계이기도 하다.그가'남성적 서정성'을 지닌 개성적 시인으로 이번 현대시동인상 심사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평가된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칫 우리 시인들은 자신이 창조적 작업의 이행자라는 선험적 자각에서 보편적 상황의 그것마저 자신의 전유물로 착각할 때가 없지 않다.문제는 시적 운용,그 자리바꿈에 있다.폐쇄적 우월주의가 독창성이 될 수는 없다.

나 개인으로서는 답답하리만큼 우리 현대시동인들은 시의 염결성과 진정성,그리고 그 위의(威儀)를 지키는 일을 시의 마지막 보루로 믿어오고 있는 시인들이다.오시인 또한 같은 현대시동인으로서 이러한 개결한 시정신이 나타낸 과민한 시읽기로 이번의 일이 마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진설명>

정진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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