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변호사회 판사 평가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가 29일 현직 판사들에 대한 평가 결과를 대법원에 제출함에 따라 법조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사법부에 흠집을 내는 부적절한 행동”이라는 우려와 “권위주의에 빠진 판사들에게 경종을 울릴 것”이란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변회는 이날 ‘2008년 법관 평가 결과’ 자료를 대법원 민원실에 접수시키고 “평가 결과를 법관 인사에 적극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창우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고압적인 자세와 모욕적인 언행으로 재판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불공정한 재판을 하는 판사가 있다”며 “변호사들의 생생한 평가를 법원이 겸허히 받아들일 때 신뢰받는 사법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자료에 판사의 이름과 사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평가 방식은 판사의 품위, 공정성, 사건처리 태도 등 세 개 항목 16개 질문에 변호사들이 A~E의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변호사 491명이 직접 재판을 받아 본 판사들에 대해 평가표를 작성했다. 평가받은 판사의 수는 456명이다.

서울변협은 이들 중 5건 이상의 평가를 받은 판사 47명의 점수를 매겨 상·하위 10명씩을 선정했다. 최상위는 100점 만점에 93.56점을, 최하위는 56.51점을 받았다. 서술형 평가도 있었다. 해당 판사가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재판을 고압적으로 진행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70세가 넘은 사건 당사자에게 반말을 했다’ ‘피고인의 자백을 강요했다’ ‘변호사가 그것도 모르느냐는 식의 모욕을 줬다’는 내용들이다. 서울변회는 올해부터 회원 변호사들로부터 법관 평가서를 수시로 제출받아 이를 취합한 뒤 내년 2월 판사 정기 인사 전 대법원에 제출할 방침이다.

대법원은 “평가 결과를 어떤 형태로든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배현태 홍보심의관은 “재판의 직접 이해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법관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고, 자칫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의 판사는 “절차와 방법이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않다면 오히려 사법부에 대한 불신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판사를 평가하는 것은 선출직 법관제도가 없는 나라에는 맞지 않으며 ▶서울변회 회원 6300여명 중 응답자가 491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대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