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편의 시조] 상치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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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시조 하면 아직도 ‘3·5·4·3’ 또는 ‘3장 6구 45자’ 같은 엄격한 형식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시조시인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보다 자유로운 형식 속에 음풍농월만이 아닌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합니다.

시조시인들로부터 번갈아가며 명시조 한 편씩을 추천받아 소개합니다. 알기 쉬운 해설을 통해 겨레의 노래, 시조의 맛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명시조 추천과 해설은 시조시인 이지엽(51)씨가 맡았습니다. 이씨는 자유시도 짓고 시조 문예지도 내는 등 폭 넓게 활동중입니다.

이씨가 추천한 조운(1900~?) 시인은 1948년 월북으로 발자취가 끊겼지만 37년 군민운동회를 주도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1년 7개월 간 옥살이를 하는 등 현실에 적극 개입한 ‘참여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로 끝나는 대표작 사설시조 ‘구룡폭포’에는 그런 그의 강단과 장쾌한 기상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입니다.

추천작 ‘상치쌈’은 어떤가요. 아마도 러닝셔츠 바람이지 싶은데요. 비라도 내린 초여름 오후, 마당 평상을 차지하고 앉아 싱그런 상추쌈 점심을 즐기는 화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장쾌함과는 거리가 있는 서민적인 삽화인데요. 이씨는 “무엇보다 작품이 관념적이지 않고 현장감이 살아 있다”고 호평합니다. 절제미도 엿보인답니다. 바람에 꽃잎은 떨어지고 나비는 날아가 버리건만, 상추쌈을 먹던 어정쩡한 자세여서 그것들을 어쩌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시적 화자는 안타까운 속마음을 감춘 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씨는 통상적인 시조 작법에서 벗어난 음보(音步) ‘희뜩’의 운용에도 주목할 것을 권합니다. 초·종장과 달리 한 행을 한 음보만으로 구성해 긴장과 변화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화자 눈의 흰자위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시조가 익살맞아집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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