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대책위장 체포 … 화염병 농성 주도한 혐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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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용산 농성자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본부는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철대위) 이모(37) 위원장을 28일 체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남경남(55) 의장과 함께 용산4구역 내 남일당 빌딩 점거를 모의하고, 화염병을 사용한 폭력농성을 주도했다.

화재 직후 망루에서 탈출한 이씨는 그동안 입원 치료를 이유로 검찰 조사를 거부했다. 검찰은 이날 낮 12시쯤 이씨가 조사를 받을 수 있는 상태라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화재발생 상황과 전철연의 관련성 여부를 조사했다. 이르면 29일 중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전철연이 점거 농성에 개입하는 등 ‘대리 투쟁’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자들에 대한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 희생자 빈소가 차려진 서울 순천향대병원에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남씨를 강제로 체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화재 직전 농성자들이 뿌린 액체의 성분을 확인하기 위한 분석작업도 진행 중이다. 사건 당시 경찰이 촬영한 동영상에는 화재 발생 1분여 전 망루 3~4층 모서리 부위가 벌어지면서 하얀색 액체가 아래로 쏟아지다 잠시 멈춘 뒤 다시 쏟아지는 장면이 있다. 수사본부장인 정병두 1차장검사는 “현재로선 액체가 물대포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시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동영상을 대검찰청에 보내 정밀 감식을 요청했다.

◆외국 사례 연구=검찰은 용산 사건과 유사한 외국 사례를 수집 중이다. 불법 시위나 테러를 진압하다 사고가 생겼을 때 공권력에 대한 처벌·면책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지를 비교·분석하기 위해서다.

검찰 관계자는 “해외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지만 공권력을 사용한 사람들을 사법 처리하는 데에는 매우 신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미국의 특수기동대 스와트(SWAT)의 직무 집행 규칙과 관련한 판례도 수집하고 있다. 또 공권력의 적정성 논란을 다룬 미국 영화 ‘룰스 오브 잉게이지먼트(Rules of Engagement:교전수칙)’를 참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용산 사건에 관여한 경찰관들의 사법 처리 여부는 ‘국민 정서법’이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의해서만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경제단체들 잇따른 대책 촉구=전국빈민연합·빈곤사회연대 등 24개 시민단체 관계자 50여 명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세입자에 대한 정부 대책을 요구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강제 철거가 거주민 인권을 침해해 유엔 주거권 특별 보고관에게 진정서를 보냈다”며 “진상조사와 강제 퇴거 중단을 위한 특별보고관의 한국 방문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24개 단체와 별도로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는 29일 청와대 앞과 서울시청 앞 등 전국 8곳에서 동시에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이들은 “재개발 정책을 재검토하고 철거민을 위한 구제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정부가 사태 수습을 외면하면 전국 100곳에서 1인 시위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철재·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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