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바로 알리기 앞장선 택시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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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종식(59·사진)씨는 ‘재야’ 역사학자다. 고구려·독도 등 역사논쟁이 붙은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아마추어 수준은 넘어섰다. 『낱낱이 파헤친 고구려본기(1~4권)』를 펴내 국립중앙도서관과 주요 대학 도서관에 납본했을 정도다.

그의 직업은 택시기사다. 오전 3시 인천 용현동 집을 나서 서울 가양동의 택시회사로 출근한다. 오전 4시부터 흰색 소나타를 몰고 꼬박 24시간을 일한다. 비번인 날에는 책쓰기에 몰두한다. 독도 관련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식사 때 외엔 말도 하지 않고 자정이 넘도록 글만 쓴다. 최근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한 일본 옛 기록이 추가 발견돼 그 한 줄을 덧붙이려고 며칠을 씨름하는 중이다.

김씨는 “쉬는 날엔 10시간 이상 수도승처럼 공부한다”라고 밝혔다. 휴가를 내 답사하러 다니기도 한다. 사료로 가득한 방 한 칸에는 ‘보학당(補學堂)’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학문을 깁는 집’이라는 뜻이다.

김씨는 고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하지만, 어릴 때 동네 어르신으로부터 한학을 배워 역사 공부에 활용하고 있다. 그는 메모광이다. 택시 안에서도 손님과 대화하다 붙잡은 생각의 실마리를 일일이 적어둔다. 김씨는 “얘기를 하다 보면 저절로 문제가 풀릴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차량에 설치된 영수증꽂이에는 그런 메모지들이 가득하다. 책을 쓰다 부족한 사료는 부인에게 부탁해 도서관에서 복사해온다. 남편이 ‘역사에 미쳐 있다’는 걸 아는 부인은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도와줄 뿐이다. 처제는 원고를 타이핑해 준다. 아들에겐 그래픽 작업을 맡겼다. 그야말로 ‘가내 수공업’이다.

김씨가 주목하는 것은 고구려사다. 우리 민족이 광대한 땅을 경영했던 시대에 대한 동경 때문에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대 인물 하나하나의 정신에 ‘꽂혔다’.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땅을 보러 다녔던 자신의 과거가 재야 역사학자로서 든든한 자산이 됐다. 그는 “이처럼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는 일이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독도 책만 마무리하면 다시 고구려사로 돌아가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논박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늦둥이 아들이 만들어준 그의 미니홈피에선 장사익의 노래 ‘찔레꽃’이 흘러나왔다. 장씨는 1980년 소리에 입문해 17년 동안 재야 소리꾼으로 지낸 끝에 비로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17년 동안 고구려 가는 길을 걷고 있는 김씨도 어쩌면 비슷한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 

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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