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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화' 걸작 남녘 땅 밟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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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 훌륭한 화가가 많다면 북쪽에도 훌륭한 화가가 많다. 분단 반세기의 벽이 그들이 창조한 그림을 우리 눈에서 멀어지게 했을 뿐이다. 9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에서 열리는 '북녘의 4대 화가전'은 헤어진 반쪽에서 일군 그림 세계를 만날 수 있는 드문 자리다. 북에서 최고의 화가로 손꼽는 선우영.정창모.김상직.김기만씨의 그림 47점이 평양과 서울을 미술로 잇는다.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이 특별전은 미국 워싱턴에서 화상으로 활동하며 조선미술협회를 이끌고 있는 신동훈(55.새스코화랑 대표)씨가 수십 차례 직접 북한을 찾아가 모은 100여점 가운데 걸작만을 뽑아 꾸렸다. 1988년부터 남북을 오가며 미술을 통해 남과 북이 하나되는 길을 찾아온 신 회장은 지난 17년 동안 북쪽 화가들과 쌓아온 우정으로 북의 조선화에 가장 눈이 밝은 전문가가 되었다.

신 회장은 "북측은 동양화를 바탕으로 한 위에 자신의 고유 화법을 발전시켜 조선화라 부른다"고 전했다. 그는 "남쪽보다 힘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사르는 북녘 화가의 모습을 그림으로 전하고 싶다"고 했다.

신 회장이 첫손을 꼽는 화가는 산률 선우영(58.만수대 창작사 조선화 창작단)씨다. 북에서 내는 타블로이드판 화보집 '조선' 5월호는 그를 "조선화의 세화(細畵) 기법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발전시켜 사람들 속에 널리 알려진 명화가"라 소개하며 "'금강산의 석가봉' 등 그가 창작한 작품 가운데 국보적 가치를 지닌 것이 수십여점이나 된다"고 평가했다. 천연 바위의 얽힘새를 주름살처럼 세밀하게 묘사한 선우씨의 풍경화는 장엄한 대자연이 들려주는 고요한 함성 같다.

효원 정창모(73.인민예술가)씨는 조선화 최고의 거장으로 받들어지는 원로 화가로 이름이 낯익다. 남에서 북으로 간 화가인 정종여.김용준을 이어 몰골화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뤘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붓질과 색채로 부분과 전체가 통일감을 이루는 효원의 풍경화는 후배 화가에게 현대 조선화의 틀이 되고 있다.

그는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조선화의 이론 작업에 애쓰면서 많은 후학들을 길러낸 공을 인정받아 77년 공훈예술가, 89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김기만(75)씨는 남쪽 동양화단의 대표작가였던 운보 김기창(1914~2001)씨의 친동생이다. 운보가 죽기 한 달 전인 2000년 12월 2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서울에 와 맏형과 눈물어린 재회를 하며 '형제 2인전'을 꿈꾸기도 했다. 어린 시절 운보의 어깨 너머로 그림을 익힌 그는 화조화를 즐겨 그려 그의 대표작 20여점은 조선미술박물관이 소장할만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기괴할만큼 구부러진 가지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붉고 흰 매화 그림이 장기다.

근암 김상직(70)씨는 현재 은퇴한 원로 미술인 창작단인 '송화(松花) 미술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 광산에서 발견한 색돌을 갈아 그 독특한 돌가루 색으로 그린 인물화와 풍경화가 유명하다. 유연하게 번져내리는 색조 속에 강건하게 펼쳐지는 필치가 조선 자연의 멋을 흔쾌히 그려낸다. 입장료 무료. 02-751-9682. (http://culture.joins.com)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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