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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부시와 차별화 … 인권문제로 첫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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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2일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켜 온 쿠바 관타나모 기지의 테러 용의자 수감 시설과 국외 중앙정보국(CIA) 감옥을 폐쇄하고, 테러 용의자에 대한 고문을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대(對)테러전 등 안보 문제와 관련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폐기하겠다는 걸 뜻한다. 또 미국의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부시와는 차별화한 행보를 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는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퇴역 군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타나모 수감 시설 폐쇄 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이 시설은 앞으로 1년 안에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는 “우린 테러와의 전쟁에서 (인권을 존중하는) 우리의 방식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국 국민의 안전”이라며 “관타나모 수감 시설 폐쇄 명령은 미국의 안보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대통령은 믿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걸 지켜본 퇴역 군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행동으로 미국은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고 국가안보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가 행정명령을 내림에 따라 관타나모에 수감돼 있는 테러 용의자들은 앞으로 1년 이내에 모두 석방되거나 출신국과 제3국, 또는 미국 내 다른 수감 시설로 이송된다. 관타나모 기지엔 현재 245명이 수감돼 있다. 이들 중 21명에 대해선 기소가 이뤄졌다.

오바마는 관타나모 수감 시설 폐쇄를 명령하면서 테러 용의자를 어디로 보낼 것인지 앞으로 30일 동안 연구해 건의할 전담반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오바마는 CIA가 다른 나라에 비밀리에 설치한 테러 용의자 수용 시설(secret prisons)도 없애라고 지시했다. 또 테러 용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신문하는 걸 금지하고 제네바 협약 준수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과 테러 용의자의 군사재판 회부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유엔과 인권단체는 박수를 보냈다.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그동안 물고문 등 여러 형태의 심문과 적절한 사법절차 없이 오랜 기간 테러 용의자를 가두는 등 탈선이 있었다”며 “오바마가 인권과 법치를 위한 결정을 했다”고 평가했다. AP통신은 “오바마의 결정은 국제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비판을 받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과 관행을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이라고 해설했다.

그러나 공화당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상원의 공화당 원내대표인 존 보이너 의원은 “수감자들을 어디로 보낼지 결정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타나모 시설을 폐쇄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인 공화당 피터 혹스트라 의원은 “이제 CIA와 군 관계자가 지하드 요원이나 테러범을 잡아도 그들을 어떻게 다룰지 모르게 될 것”이라며 “현실보다 이상을 앞세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선에서 오바마와 겨뤘던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오바마의 행정명령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남게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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