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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서울 사창가 영화세트로 되살아난다 - 영화 '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비좁고 허름한 골목을 따라 벽돌과 판자를 뒤섞어 양옥 반 한옥 반으로 얼렁뚱땅 붙여놓은 집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유곽의 시작이거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길모퉁이 약국과 구멍가게는 이곳의 고통과 피로를 순간적으로 잊게 만드는'필수품'들을 판다.전봇대마다 낙서와 함께 지저분하게 붙어있는'성병'광고.치료제를 팔겠다는 것인지,병 자체를 소개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런 간판도 없지만 홍조를 띤 빛이 창틈사이로 새어나오고 우스꽝스럽게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결코 귀엽지 않은 여자들이 심드렁하게 행인들을 부른다.

집집마다 한평도 안되는 방들은 미련이 묻어나는 타락 속에서 털어내버리는 욕망과 절망적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짬뽕된 통조림들이 된다.임권택 감독의 신작'창(娼)'을 제작하는 태흥영화사(대표 이태원)는 경기벽제의 촬영장과 오픈세트를 한국 유곽을 재현하는 무대로 바꿨다.

60,70년대 서울의 유곽지역을 대표하던 종로3가의 사창가(속칭'종삼')가 모델.30,40년대 서울 종로거리를 재현했던'장군의 아들'의 무대로 사용됐던 세트를 그 뒷골목인'종삼'으로 개조한 것이다.

모두 2억원을 들여 사창가를 만드는 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미술감독 김유준(63)씨는“심야영업을 하던 80년대 유흥가와 휘황찬란한 쇼윈도가 돋보이는 90년대식'텍사스 촌'을 재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종3'이라는 퇴락한 70년대의 사창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영화속에선 실제 무대가 미아리지만 골목길과 소품등을 복원하는 데에는 전농동 속칭'588'에서 실용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또“종삼을 복원하는 데에는 실제 종로3가 뿐만 아니라 60년대 영화촬영소가 근처에 있어 영화인들이 빈번히 찾았던 답십리의 유곽을 많이 반영했다”고 귀띔했다.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오늘에 재현되는 종삼은 한국경제 발전의 뒤안길에서 절망과 고통을 달랬던 세대에겐 추억의 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한편 제작진은 취재차 들른 여러 사창가.술집등에서 일하는 여자들로부터 채록한 그녀들 특유의 노래들을 영화속에 채용해 들려줄 예정이다.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70년대 17세에 사창가로 흘러들어와 80년대를 거치며,90년대 초까지 도시의 뒷골목을 헤쳐나갈'창(娼)'의 주인공역을 맡은 신은경. 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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