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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리 감독 최신작 '버스를 타라' - 흑백갈등 소재 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미국 의 흑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온 스파이크 리 감독의 신작 '버스를 타라'가 비디오로 나왔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영화의 대부분은 버스 안에서 진행된다.이 버스는 흑인들이 자신들의 권익과 우정을 보여주기 위한'1백만명 행진'을 하기 위해 워싱턴DC로 가는 대륙횡단버스들중 하나다.

각기 다른 입장의 흑인 20여명을 태운 버스 안에서 벌어지는 대화와 해프닝들로 엮어진 이 영화는 지금까지 거론돼온 미국 흑인문제를 총체적으로 집약해 놓았다.

성서의 선지자같은 풍모의 중년 여행안내인,흑인역사를 공부하는 늙은 학생,법원 명령에 따라 수갑으로 묶여 있는 아버지와 아들,게이인 전직 해군,비교적 밝은 피부의 경찰,비디오 다큐멘터리를 찍는 UCLA 대학생,정장을 하고 검은 안경을 쓴채 아무말도 안하는 남자등.2시간 동안 이들이 자연스럽게 떠벌이는 말들 한마디 한마디마다 갖가지 흑인문제들이 배어나온다.

왜 흑인들은 미국에서 울분 속에 살고있는지,미국의 흑백갈등은 얼마나 골이 깊은지,피부색에 관계없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쉬지 않고 질문과 대답을 쏟아낸다.

리 감독은 영웅과 평민,선과 악등의 평가를 벗어나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방식의 인종차별을 보여준다.

이렇게 흑인 문제들을 실제로 보여주기보다 말로 늘어놓는 작품이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버스를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시종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리얼리티 때문이다.

리 감독은 이 영화를 적은 돈을 투자해 무척 서둘러 만들었다고 한다.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작품을 빛나게 한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화려한 수사를 자랑하기보다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영화에선 실제로 비디오 캠코더로'1백만명의 행진'을 찍는 아마추어 촬영과 영화 자체를 뒤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문제와는 별 관계가 없는 한국의 관객들이 보기에도 에피소드들 하나하나에 진실이 배어있다고 느끼게 된다.

컬럼비아 트라이스타사는 스파이크 리의 그동안 작품들을 포괄하는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가 전혀 흥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극장개봉하지 않았다.

리 감독의 작품 가운데 국내에서 비디오로 나온 것은'똑바로 살아라''모 베터 블루스''정글 피버''스쿨 데이스''말콤X'등이 있는데 극장 개봉된 것은'정글 피버'와'말콤X'뿐이다.그나마 흥행이 썩 좋지 않자 금방 극장에서 사라졌다. 스파이크 리의 영화들은 몇번씩 보면 볼수록 새로운 맛이 나는 다분히 비디오 애호가용인 것인가.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스파이크 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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